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2019/20년 겨울과 2020/21 겨울, 두 학기 동안 AStA(대학 총학생회)에서 주관하고 홍보하는 외국어 수업 중에서 한국어를 맡아 가르친 적이 있었다. AStA(아스타)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친구가 혹시 한국어를 가르쳐 볼 생각이 있는지 나에게 처음 물어 왔을 때, ‘재미있을 것 같다’ 또는 ‘좋은 기회다’라는 생각보다도 두려움과 걱정이 먼저 앞섰다. ‘학업 외적으로도 독일어를 따로 공부해야 할 상황인데, 이런 부족한 독일어로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망설임과 고민 끝에 결국 도전해 보자 싶어 받아들였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정말로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나는 한국어를 또 다른 눈으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내가 또 언제 모국어를 낯설게 보고 객관화하는 시도를 해 보겠는가? 물론 한글 자모에서부터 기초적인 문법과 표현들을 독일어로 가르쳐야 하는게 나의 의무이긴 했지만,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웠다. 수업 때 받았던 질문이나 반응들을 통해서 한국 사람으로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된 경우도 있었다. 한국어가 모국어라고 해서 내가 이 언어를 잘 아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성격상 '이건 그냥 이런 거야. 그냥 외워!'가 안 돼서, 아주 얕게 나마 왜 그런 건지 스스로 납득을 해야만 했고, 나도 몰랐던 것 또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설명해 주자니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잘 설명하고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 어려움을 느끼다 보니 수업 후반부로 갈수록 준비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했다. 이제 막 한국어에 입문한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이므로, 너무 문법적인 설명에만 매달리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래서 교재 내용 외에 ‘한국인으로서 겪는 독일어의 어려움’과 같은 내 개인적인 에피소드들을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한국 문화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예문을 만들어 가르치기도 했다.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대부분 K-POP이나 K-Drama에 열광하고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두 학기 모두 기초반에서 수업을 들으신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물론 할머니께서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으시더라도, 낯선 문화권의 생소한 언어와 문자를 포기하지 않고 배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할머니의 그런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실 한 외국어를 필요에 따라 의무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순수하게 그 나라 언어에 매력을 느껴 재미있게 공부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 외국어 공부는 처음 막 알아갈 때가 제일 재미있는 것 같다. 내가 독일어를 처음 배웠을 때에도 그랬다. 일단 해당 언어의 기본적인 원리와 특성을 알고, 조금 더 나아가 모국어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게 되면, 마치 나의 세계가 확장되고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배우면 배울수록 점점 더 헷갈리고, 나중에 목표가 뚜렷해지고 욕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어학은 점점 더 괴로워진다(나 역시 아직도 이러한 상태에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2019/20 겨울학기에는 교실에서 직접 학생들과 눈도 맞추고, 화이트보드에 판서도 하고, 다양하게 연습도 해가면서 수업을 했다. 그때도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2020/21 겨울학기에는 두 개의 수업을, 더군다나 화상으로 수업을 진행했기에 학생들이 얼마나 내용을 잘 흡수하고 이해했는지는 솔직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열의가 있는 학생들이라 질문을 꽤 많이 받았다. 또한 내가 문화적 차이나 말의 뉘앙스 같은 부분들을 설명하다 어려움을 토로하면, 그들 자신이 이해한 방식대로 그것을 풀어서 나에게 다시 설명해주기도 했다. 기분 탓인지 화면 너머로 웃는 모습들을 자주 본 것 같다. 아마 수업 중 때론 좌충우돌하고, 또 모니터 앞에서는 두 손이 자유로운 바람에 나의 화려한 손동작이 수시로 가미되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