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독일은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사회다. 여기서 '보수적'이라함은 정치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회조직 내의 원칙과 규정을 고수하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와 관련된 것이다. 때문에 독일은 시스템상으로나 국민 정서상으로나 '빠른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만약 빠르게 대응하고 변화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코로나 팬데믹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독일 사회의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지만(ex. 일부 디지털화로 인한 상대적인 편의성 향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응 속도와 방식에 있어서 한국과는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사실 아무리 전세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위기 상황이라고는 하나, 나라마다 대응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마다 상이한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국민들의 정서와 사고 방식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020년 봄, 나는 독일 정부가 코로나 전염병이 심각한 '팬데믹'임을 인지하고 느릿느릿, 좋게 말하자면 매우 신중하게 이 사태에 대응해 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며칠 간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화장지 보급 투쟁에 나서야 했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기 전까지는 이상한 눈초리를 받아가며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독일인들이 워낙 마스크 착용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면역력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의 의료시스템을 믿는 것인지 '개인 방역'에 대한 인식, 즉 보건의식이 부족해 보였다. 그러다보니 감염자수는 계속해서 급증하게 되었고, 정부에서는 결국 국경 통제, 가게 영업 중단, 외출 금지 등과 같이 사회적 접촉을 규제하는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게 되었다. 하드락다운, 미니락다운 이런 식으로 락다운을 거듭해 행동이 제한되고 그토록 쓰기 싫은 마스크 착용까지 의무화(대중교통 내 미착용시 과태료 부과)되자, 독일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반감이 점점 심해지고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는 듯 했다. 그리고 이것은 코로나 음모론과 뒤섞이며 대규모 시위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는데, 코로나 정책 반대론자들은 메르켈 정부를 시민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훼손하는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유'를 외쳤다.
나는 이렇게 자유를 외치며 꾸준히 코로나 정책 반대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에 사실 조금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코로나 음모론을 믿고, 정부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의 말을 불가피하게 가까이서 자주 듣게된 적이 있는데, 이들의 반감은 자연스레 안티백신으로까지 이어졌다.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면 이런 말들을 계속해서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내며 무시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솔직히 너무나도 괴로웠다. 게다가 마스크 쓰고 산책을 나가면 'No 코로나'(코로나는 없다)라며 대놓고 지적질을 해대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나는 이들을 마주하며 '도대체 무엇이 저런 음모론을 믿게 만드는 걸까?', '이들이 말하는 자유라는게 대체 뭘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규제가 없는 곳에서 행한 이들의 자유로운 행동이, 도리어 공적 영역에서의 자유를 더욱 더 오래 제한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닌가...? 그런데 반대론자들은 계속 '자유'를 구호로 내세운다. 솔직히 한국인인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백신접종 이후 규제가 완화되었다가 최근 또 다시 확진자가 하루에 몇만명씩 나오는 상황이 되자, 독일 정부는 다시 규제를 강화하며 국민들에게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자유와 연대. 한국 사회가 문화적‧역사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타인을 먼저 배려하고, 또 '하나'가 되어서 위기에 대응하고 극복해나가는 특징이 있는 것과는 달리, 독일인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같은 위기를 맞았을지라도, 어쩌면 이러한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이 코로나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코로나 위기 상황이 독일인들 스스로 '자유'가 무엇인지 되묻고 성찰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