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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tharina Kwon Sep 10. 2021

날씨와 사계

독일 유학 생활 에세이

 독일에서 생활한지 6년 째, 나는 날씨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꾸 날씨 타령을 하고, 날씨 탓을 한다. 한국에서는 두통을 앓아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독일에서는 급변하는 날씨와 기압 차이 때문인지 두통도 꽤 자주 앓는다. 독일은 전반적으로 날씨가 좋지 않고, 계절에 상관없이 비가 자주 오는 편이다. 사람들이 종종 농담조로 이런 날씨가 독일에서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자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기후 환경이 인간의 멘탈리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일리있는 말인 것 같다.  


 독일은 계절에 따른 기온의 차이가 그리 뚜렷하지 않은 대신, 매우 변덕스럽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옷을 간절기의 연속처럼 입어야 한다. 봄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날씨가 급변하기도 하는데, 특히 4월 무렵의 변덕이 죽끓듯하는 날씨를 가리켜 독일인들은 ‘전형적인 4월 날씨(Aprilwetter)’라고 자주 표현한다. 나는 독일에 온 뒤로 자주 하늘을 올려다 본다거나, 기숙사 방 창문을 통해 의도치 않게 날씨 변화를 자주 관찰하곤 했는데, 특히 올해(2021년) 4월 초는 ‘4월 날씨’라는 표현이 왜 따로 존재하는지 이해가 될 만큼 날씨가 변화무쌍했다. 돌풍이 불며 눈보라가 휘날렸다가 다시 해가 나질 않나, 심지어 그 다음날에는 하루에도 몇 번 씩 눈과 비가 교차하며 내렸다가 다시 맑아지기를 반복했다.  

 

 독일의 여름은 한국에 비해 쾌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습도가 그리 높지 않고, 7-8월의 한여름에도 긴팔 외투를 걸쳐야 할 만큼 쌀쌀할 때도 있다. 대신 해가 나는 날에는 자외선이 강하다. 한국 사람이라면 해가 쨍쨍한 날 자외선 차단을 위해 완벽 대비를 한 후 외출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햇빛이 귀해서 그런지 다들 마치 햇빛 좀비가 된 듯 일단 집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물론 햇빛을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와 모자를 착용하고 긴팔을 입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사실 쨍쨍한 햇빛 아래서 보호장비없이 일광욕을 하며 빨갛게 익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나도 날씨가 좋을 때 집에 있으면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목적없이 ‘일단 밖으로’ 나간다.

 

 가을은 어떨까? 나는 사계절  가을을  좋아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독일에서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충분히 즐겨본 적이 없는  같다. 아마 해의 길이 때문일 것이다. 독일의 여름은 낮이, 겨울은 밤이 너무 길다. 여름에는 해가 오후 9-10시쯤 되어서야 슬슬 지기 시작하지만, 겨울에는 오후 4시쯤 되면 이미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져 있다.  때문에 10월을 기점으로 여름과 가을, 가을과 겨울의 경계가 뚜렷함이 없이 겨울로 바로 진입하는 느낌이다. 해가 점점 늦게 뜨고, 점점 빨리 지는 바람에 알록달록 예쁘게 물드는 가을 풍경을 만끽할  없는 것이다.

  

 겨울 역시 전체적인 기온만 떨어질 뿐, 흐리고 습하고 비가 자주 오는 보통날의 연속이다. 그런데 올해 2월 초에는 며칠간 유례없는 폭설이 쏟아졌다. 도시 전체가 하얀 눈으로 뒤덮이고, 교통편마저 취소되어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5년 넘게 뮌스터에서 살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눈이 수북이 쌓인 첫날 아침에는 눈을 맞으며 호기심에 산책을 나섰었다. 아직 제설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어디가 인도이고 어디가 차도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구간도 있었는데, 발이 푹푹 꺼지면서 걷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바람도 세게 불어 계속해서 눈보라가 일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눈이 오는 창 밖 풍경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책상이 창문 앞에 놓여있기 때문). 그렇게 하루 종일 보다 보니, 밤에 잘 때는 눈을 감았는데도 마치 스노우볼처럼 흰 눈이 내리는 잔상이 지속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살면서 하게 될 눈구경을 한꺼번에 앞당겨 실컷 한 기분이다.   

 눈 덮인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눈이 그친 이후에도 미비한 제설 작업으로 인해 길이 얼고, 옆으로 대강 치워둔 눈은 빙산이 되고, 버스도 제대로 안 다니는 바람에 자연이 준 자가격리라는 선물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교통이 정상화되기까지 한 2주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동네 산책 뿐이었는데, 수상스키를 타듯 자동차나 트랙터에 줄을 매달아 스키를 타는 사람, 신이 나서 눈장난을 치는 아이들, 가족단위로 나와 엄마 아빠 손잡고 썰매타는 아이들, 발이 시려워 총총 뛰며 주인과 산책하는 강아지… 이 모든 것들을 보면서 ‘역시 독일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즐길 줄 아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 부럽기도 했다. 불평을 해봐야 어차피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독일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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