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망각 진실

단편 소설

by 일영

잠이 오지 않아,

이러다 바다 깊은 곳에 뿌리라도 내릴까 겁난다.

산호가 되어 버린다면 어떡하지,

모습을 잃기라도 한다면.

별난 생을 살고 있단 걸 알지만 이만큼이나 이방인일

수 있나 싶었다.

묻고 싶은 게 많은데 가족도 친구도 사라졌다.

때때로 공허했으나 실은 아무렇지 않았다. 이유를 찾아야 했다.

기댈 것은 유일한 기억인 카운트다운.

이명처럼 울리는 새해 전야의 환호, 거기에 뒤섞인

잡음. 압축된 탓일까? 낡은 메모리는 왜곡이 잔뜩 들어가 있다.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축 가라앉으면 위에 동동 뜨는 것은 다름아닌 액체 되어 버린 삶.

이런 저런 체내 수분이 포함돼 있고 그러한 정보는 날

더욱 기이한 생물로 분류한다.

누군가 따로 분류 작업 따위를 한다는 게 아니다.

실재했던 일이긴 하나 오래 전에 멈춰진 행위이다.

다만 유전자에 박혀 버린 감각은 끔찍할 정도로 여전해서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한마디로 인간에게 끝도 없이 놀아난다는 소리다.

인어란 모름지기 그래야 하는 존재라고, 우린 영원에

가까운 세월 동안 새겨 왔다.

그러고 보니 인간의 목소릴 들은 것이 언제가 마지막

이었던가. 애써 귀 막은 물 속 생활에 이제는 신물이 나는데 솔직해져도 되는 것인지. 인어의 본분을 잊어도

되는 건지, 그 잘난 인간들 얼굴이라도 볼까 싶은데

허락이 필요한 건지 통 알 수가 없다.

이런 마음마저 별종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별종 취급 받고 명예롭게 죽을까 싶다. 금지된 보물 상자를 열어

젖히고 인어의 탈을 쓴 괴물이라 불리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다리 묶인 인형같은 삶을 그 상자 속에 처넣고 돌아오는 장면이 아른거리는 듯하다.

늘상 열려 있던 문을 열고 나와 태어나 가장 빠른 헤엄을 시작했다. 고향을 등지고 날아오르는 내가 마치 언젠가 마주쳤던 인간의 모습 같았기에 이것이 도망인지 해방인지 알기 어렵기도 했다. 수 백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따가운 햇볕이 해수면에 닿는 중이었다.


어떤 인어는 왕자라는 것을 만나려 뭍으로 나갔다 그만 거품이 되었고 어떤 인어는 인간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제 다리를 잘라냈다. 난 무엇을 내어주어야 할까. 그토록 경멸하는 인간을 구경하러 나왔으니 더욱 괘씸하게 생각할까?

이젠 내가 얼마의 시간을 살았는지, 아이인지 노인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인어의 삶이 나를 잃어가는 과정이란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손을 뻗었고 만져질 듯 아닐 듯한 감각이 말초에서 깜박댔다. 때가 됐다. 왕자가 아니어도 되니 재밌는 이가 보인다면 즐거울 텐데, 얼핏 그런 생각을 하며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인간이,

인간이 신을 믿는단 소릴 들은 적 있다.

목도한 풍경은 적어도 신의 수하조차 살지 않을 듯한

풍경이었다.

깨끗하나 조용하고 조용하나 경악스럽다.

온화하나 기이하고 기이하나 가련하다.

눈에 담기조차 힘든 장면들이 띄엄띄엄 뇌리에

불균등하게 배치됐다. 신을 찾았다. 인간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하면서. 신이 필요했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맞나요? 신이시여.

이 세상에 나를 제외한 이가 한 명이라도

있나요? 종종 나를 찾아오는 기억의 상실이

나를 이토록 외롭게 만들어도 되는 것이었나요?

여긴 거대하고 평화로운 감옥이지 않습니까.

오 신이시여.

소리없는 울림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찬찬히 깊은 물 속에 먹히듯

가라앉는다. 인류도 아닌 것이 꼴에 남아버렸다.

마지막까지란다. 그 사실은 머리속 깊은 곳에

다시 잠겨버렸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러다 산호가 되어버릴까 겁난다.

매거진의 이전글낭만, 유령, 우정, 예언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