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만한 눈

단편 소설

by 일영

그 커다란 눈이 동공을 굴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몸은 허공에 뜬 상태였다.

마치 심판대에 오른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저건 평생 내 뒤를 따라다니던 눈일 테다.

사건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던 시선이다.

그 기이한 눈이 여기로 나를 불렀다.

새파란 하늘이며 부유한 것까지 모든 게

거짓 같았지만 어째 내 몸의 다섯 배는 될 이 눈만큼은

진실 같았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뚫어져라 보던 눈이,

당최 위치를 알 수 없는 구멍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나 같은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사라진 것의 빈 자리를 알아채는 경우는

없었다며 어쩌다 알았느냐 물었다. 그 목소리는

조금도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동정하는 것도 같았다.

나는 질문의 의도를 한참이고 생각하다 말했다.

-응. 어느 순간 나는 그것과 이별했더라고.

운 좋게 알아버렸어. 나도 모르게...

알고 나니까 무시할 수가 없었어.

찰나일 뿐이었는데. 진작에 사라진 거였는데.

붙들고 살았지.

주절거리는 입이 건방스럽게 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심장을 뒤집어 꺼낸 솔직한 심정이었다.

정말이지 몰랐고, 어지간한 타인들 역시 그랬으며,

그럼에도 알아채고 말았다. 나는 핏줄 하나로

엉킨 관계에 내내 붙어 있었다. 끈덕지게,

조금 징그럽게.

명명하자면 백일몽이었는데도.

사실 시작은 사진보다 바랜 기억에서였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순간이 아이의 가슴에 분명하게

박혔다.

6살 무렵의 언젠가, 엄마와 아빠는 내게 난생처음

선물과 함께 그것을 보여 주었다. 고깔모자를 쓴 채로

바보 같은 얼굴로 불을 꺼트렸다.

이후 틈이 날 때마다 그것을 떠올렸다. 모양은 어느새

주황색 불빛으로 고정되었다.

나는 그것을 지금껏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

충만함? 따스함? 글쎄,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어쩌면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이마저도 확신이 없다.

머리 한 켠 마련한 굴에 주황빛 불빛을

집어넣어 두고두고 꺼냈다.

-나는 그 불이 계속 내 곁에 살아 숨 쉬는 줄

알았어. 그래서 비슷한 것이라도 보이면 당장

만지려 했어. 손에라도 닿으면 안심이 됐으니까...

왜인지 불안했는데도 그런 것쯤은 무시하고

속이 텅 빌 때면 그것을 껴안았어. 이미

오래전에 꺼졌는데도 전혀 몰랐지. 그게 분노가

됐던 것 같기도 해, 실은.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푸르기도 했다가

새빨개지기도 했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본래 색을 되찾았다. 차분해 보였다. 그 불도 처음엔

저런 빛이었을 테지.

여자도 남자도 짐승도 그 무엇도 아닌 목소리로 눈이

다물어진 구멍에서 소리 냈다.

그래, 우린 오래전에 갈라졌어,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마치 굴에서 흘러나온 것 같았다.

나는 애매하게 고갤 끄덕였다. 일부러 태연한 척

하는 입매가 아마도 일그러져 보였겠지.

-알아, 근데 나는 좀 뒤늦게 깨달아서 이제서야

이별하려고 했지. 그러려던 참에 여기서 눈 떠 버렸네.

점점 친숙하게 느껴졌다. 커다란 눈은 눈꺼풀을

천천히 닫았다 열더니 안에 나를 비추어 주었다.

조그마한 애가 보인다. 입술을 모아 촛불이라도 끄려는 참인가? 주황색 불도 보인다. 아무것도 모르고

환희에 찬 얼굴이 어리석다.

그것은 왜 언질 하나 없이 공중으로 사라진 건지,

왜 유사한 모양까지 흉내 내며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지 묻고팠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그래서 손에 쥔 날붙이로 물음을 대신하지만.

공허는 멈출 줄 몰랐더랬다. 어느 순간 깊이 파고든

날카로움은 나를 응시하는 지구만 한 눈알과, 새파랗다 못해 기분 나쁜 여기 하늘보다 비현실적이었다.

무엇을 돌려주려던 것일까, 나는 그들의 깊은 곳을

찌르며 생각했었다.

살인자를 낳은 두 사람의 등은 금세 구부러졌다.

치맛단에 핏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그랬지 참.’

현실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조금 혼란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목소리로 눈이 말했다.

-기대하지 말고 기대지도 말았어야 했어.

가여운 아이, 그리고 못난 아이.

너를 위하고 싶었는데.

집착이 뿌리를 내리면 네가 그것인지,

그것이 너인지 알 수 없게 되잖아.

내게도 눈이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인가,

눈가가 따끔거렸다. 희뿌여지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 애썼다. 이유는 없다.

이 기이하게 맑은 곳에서 깨어나면 안 될 것 같았다,

단지 그랬다.

눈이 나를 집어삼켰다.

어쩌면 그건 예견된 일인지도 몰랐다.

...

정형화된 그림. 그건 액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너른 초원, 물감을 끼얹은 것 같이 파아란 하늘.

프레임 바깥에선 시들어가는 주방의 조명과

힘 없는 생일 노래만이 울리고.

순식간이었다. 내 앞에는 유난히 커 보이는 케이크와

불빛이 있었다. 하늘은 사라지고 없었다.

급격히 추워졌다. 작아진 손과 발은 균형감을 잃게 했다.

작은 갈비뼈가 박수 소리에 맞춰 움직였고 오래 전에 버린 시계는 재촉하듯 째깍댔다. 무엇을 재촉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조금, 기억과 달랐다.

입이 아무렇지 않게 초를 꺼트렸다.

살짝 열린 문 틈 새로 눈이 보이는 듯했다.

불이 꺼지자 사라졌다. 오른손에 묻어 있던

붉은 자국과 상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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