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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닉 Apr 14. 2024

스스로 생각하기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은 저서에서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스스로 생각한다는 건 과정의 주도권을 갖겠다는 의미다. 마치 영화의 결과만 보는 느낌이 아니라, 결과로 나아가는 감정선들을 온전히 느끼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결국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과만 바란다는 것은 죽은 것을 사랑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면, 그 자체가 창의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는 자신과 100% 동일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재료로 요리하는데 독창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대로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는, 생각 또한 배달 음식 시켜 먹듯이 한다는 것이다. 관료화에 매몰된다면 자신의 생각이 없이 거기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는 “레코드 플레이어”가 되고 만다. 자신이 직접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했다고 느끼겠지만, 사회가 제시한 몇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여 행동한 것뿐이다. 우리는 “레코드 플레이어"가 아닌 창조적인 “모차르트”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면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나의 내면과 대화한다는 것이다. 내면은 관심받고 사랑받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존재이면서도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타인의 사랑에 의지하지 않게 되고, 독립적일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마조히즘적 사랑'과 ‘사디즘적 사랑'에 빠지지 않게 되고, 상대에게 부담 주지 않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할 사람의 기본 조건이다. 또한 프롬은 사랑이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닌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라고 했다(또 다른 저서 <사랑의 기술> 에서).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기꺼이 자아와 대화하는 시간을 내고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태도를 연습하는 것이며 결국 그 태도는 타인과 그리고 자연의 사랑으로까지 뻗칠 수밖에 없다.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 즉 삶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을 외부에서 보면 생기가 넘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타인에게 자신을 사랑스러워 보이게 만듦으로서(의도는 아닐지라도) 사랑의 태도를 전파하는 역할까지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려면, 결국 자신에게 돌릴 ‘관심 자원'이 필요하다. 광고들과 SNS에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있는 것들을 회수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1차. 관심을 회수한다) (2차. 회수한 관심을 스스로 생각하는데 투자한다) 처럼 단계적으로 나뉘는 게 아니고, 상호 작용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야 ‘관심 자원'의 소중함에 대해서 알게 되고, 알게 됨에 따라 관심을 더 거둬들여 필요한 곳에 쓰게 된다. 이런 순환 속에서 손에 들어오는 ‘관심 자원'은 점점 커지게 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도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이런 순환의 물꼬를 트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부모님 혹은 친구의 영향일 수도 있고, 우연히 만난 책의 영향일 수도 있다.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본 “소셜 딜레마"일 수도) 어떤 이유에서든 이 순환이 시작된 사람은 행운아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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