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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후레쉬 Oct 30. 2022

그대들의 계절

221029, 반계리 은행나무


수령이 800년을 훌쩍 넘긴 은행나무를 보고 왔습니다. 드라마 <도깨비>의 주인공 김신 나이가 938살 정도니 아마 비슷한 시대에 새싹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만, 모진 땅을 뚫고 비바람을 견뎌갔을 테죠. 


주말은 엄마 생신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생신이 11월 중순 정도여야 하는데, 음력이 빠른 해인지라-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이 아닌 것도 제법 괜찮았습니다. 하늘이 완연하여 노오란은행 단풍을 보면 좋을 것 같았고요.


대전만큼이나 노잼 도시로 알려진 원주에는 딱히 볼 것은 없지만, 가을 즈음에는 '반계리 은행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한 해에 겨우 한 주정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 주차장이 넓지도 않고, 좁은 마을길을 통과해야 하는 곳입니다. 교행이 안 되는 도로를 통과하여 깔짝거리는 주차를 해낼 수 있는 실력이 있다면 - 압도적이면서도 고즈넉한 자태에 머리를 비우기도, 생각을 하기도 좋습니다. 수은행 나무인지라 열매도 열리지 않아 고약한 냄새도 없는 것이 눈으로 음미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며, 우리 엄마 아빠의 계절은 어느 정도 일까 생각해봅니다. 80년대 치고 늦은 결혼을 하신 터라 막내인 저와는 나이차가 꽤 있습니다. 아빠가 칠순이 지났고, 엄마가 칠순을 앞두고 계시니- 아마도 지금 제 나이쯤 유아원에 다니는 저를 키우셨을 테지요. 신체의 퇴행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잦은 고장으로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는 요즈음이 부디 가을의 시작이었으면 합니다.


봄이었을 시기에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대학교육도 못 받아 본 채 고생을 했고, 여름에는 산업화 시대에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자며 주 6일제 근무를 하는 남편으로- 외벌이 남편의 노란 공무원 월급봉투를 아끼고 아껴 살림을 사는 아내로- 시간이 가는 줄 모르며 성실과 지혜로 버텼을 겁니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어."라는 말을 종종 하시지만, 그 말이 고난의 시절에 자그마한 마데카솔 바른 대일밴드라도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꿈이 있었을 테고, 현실 앞에 좌절이 있었을 테니까요.


친구들의 부모님이 병원에 오가시기도- 상을 당하셨다는 부고를 전해 듣는 일도-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백세시대라고들 하지만,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뿌리 깊은 반계리 은행나무만큼이나 모진 세월을 견뎌온 엄마 아빠의 늦가을과 겨울은 멀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지금이 색감 고운 단풍을 뽐낼 가을의 시작이길 바라봅니다.


"엄마 아빠! 저 은행나무도 아직 800살밖에 못 살았네? 건강하소서!"


부디 지금이 색감 고운 단풍을 뽐낼 가을의 시작이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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