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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Apr 01. 2024

공모전에 떨어지고서야


두어 군데 수필을 응모했다가 떨어졌다.

일어나려고 바닥에 손을 짚은 격인데 엉덩이도 떼기 전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다른 브런치 작가들에 비하면 대단한 활동을 한 것도 아니다. 고작 A4 1~3장짜리 글로 처음 시도한 일이다. 그런데도 한 줌짜리 자존감이 곤두박질치고, 한없이 쪼그라드는 글쓰기가 되어버렸다.


빵틀에 반죽 모양 잡듯 침대 모서리에 몸을 끼워 넣고 며칠 책만 읽었다. 작가소개가 없는 책, 뒤늦게 읽은 <불편한 편의점>이 시작이었다. 주말 내내 김호연 작가 책만 다섯 권째다.


'이 작가 뭐지?'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 궁금하게 만든다.

그러다 작가의 이력을 검색해 보고선 이내 수긍해 버린다.

'그러면 그렇지. 그냥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구나.'

전공, 수상작, 시나리오, 영화, 연극.

뭐 하나 부족하지 않은 프로필이다. 대단한 경력과 화려한 인맥으로 글 좀 쓴다는 수많은 작가에 비해 쉽게 기회를 잡아 성공한 것 같아 마음이 뾰족해졌다.


그리고,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를 마지막으로 책을 덮었다.

브런치에 막 글이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작법서 정도라 생각하고 빌린 책인데 호되게 후드려 맞고 만다. 작가가 글밥을 먹기 위해 고군분투한 인생, 그의 노력과 집념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에 비하면 나의 수필 공모전은 고작 글자 배열 맞추기 놀이를 한 셈이다.


그는 공모전을 순회해 너덜너덜해진 글도 다시 쓰고 고쳐 써, 십 년이 지나도 세상에 다시 꺼내놓는다. 공모전에 돌고 나면 탈락하더라도 내 작품이 생기는 것이고, 고쳐야 할 작품, 더 좋아질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멋진 말이다. 그만큼 써놓은 글이 참 소중하다. 꾀를 부려 고쳐 쓰느라 해져버린 글도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한 글이다. 돈 들이지 않고 돈이 될 만한 유산을 보유한 기분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글쓰기 습관은 이미 유명하다. 김호연 작가도 기간을 정하고 매일 A4 3장 분량의 글을 무조건 썼다고 한다.

장항준 감독이 고민하는 딸에게 들려준 말도 화제가 됐다.

"아빠, 난 왜 소설을 시작하면 끝을 못 내지?"

"어른도 그렇다. 마감이라는 게 있는데 그건 돈을 받아야 생긴다. 넌 돈을 주는 사람이 없지 않냐. 그러면 공모전이란 게 있다."


성공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한다.

꾸준히 써라.

정해진 분량, 마감일을 정하고 맞춰 그냥 써라.




한동안 글을 발행하지 않으면 브런치가 알림 문자를 보낸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자기가 뭘 안다고. 쓸 때 되면 쓰겠지.'


성공한 사람 말만 맹신하는 사대주의가 따로 없다.

불현듯 프로그래밍에 맞춰 보내진 문장을 다시 열어 부드러운 버들강아지를 훑듯, 한 글자 한 글자 눈으로 쓸어본다.


-아무것도 안 하는 판때기인 줄 알았더니 틀린 거 없이 살뜰히 챙겨주는 브런치.-


요즘 따라 브런치가 여간 소중한 게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애틋함이 더 커진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고향 같은 곳.

해준 것이 없다고 벗어나고 싶어 투정을 부려보지만, 이만한 곳이 없다. 나를 품어 주는 유일한 곳이다.


치유하겠다고, 살겠다고 시작했던 글쓰기인데 욕심을 부리고 말았다.

공모전에 떨어지고 나서야 돌아본다.

브런치를, 내 주제를, 글을 쓰려고 했던 다짐을.


그리고,

공모전에 떨어지고서야 작심삼일 같은 글을 써본다.


꾸준히 쓰자.



사진출처: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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