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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Sep 12. 2024

앞집 여자의 딸


경찰차가 와있었다. 사이렌도 없이 두 대가 올 일인가 싶다가도 내심 반가웠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한 게 아니구나.-


앞집 여자와 딸이 울부짖으며 욕설을 퍼부은 지 40여 분이 지났다.


앞집에는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불행한 목소리가 산다. 아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울기는 해도 대들지 않았다. 그냥 늘 화가 난 엄마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온 사방 전화로 불평을 늘어놓는 목소리가 사는 집이다.


벌써 2년째다.

2년여 동안 부유하던 음성이 드디어 형체가 되어 우뚝 섰다.

-이렇게 생긴 사람들이구나.-


여자는 내 또래쯤 될까. 딸은 엄마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크다. 중학생 정도로 보였다. 그냥 요즘 아이처럼 하얀색 크롭 티셔츠에 와이드 청바지를 입고 있다.


밥상 앞에서 밥을 먹는 자세 따위로 욕을 먹던 아이, 어떤 남자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휴대전화를 뺏겼던 아이, 비 오는 날 문밖으로 내쫓기고도 현관문을 두들기던 아이다.


초등학생인 줄 알았다. 가출하고도 남았을 법한 언어 폭력에도 말대꾸를 하지 않길래 어린아이인 줄 알았다.

담임에게 소리를 지르는 엄마가 창피했을 텐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길래 아동이라 생각했다.


센서 등이 꺼질 때까지 계단에 서 있던,

내게는 그림자 같았던 아이가 드디어 오늘 터져버렸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이 울부짖었고 악다구니를 썼다.

그러다 마침내 문장을 말했다.


-꺼져, 미친년아.-

아이가 엄마에게 하는 말이다.

-저 쌍년이, 넌 내가 경찰에 신고해서 정신병원에 처넣을 거야.-

-신고해, 미친 장애인 년아.-

아이가 다시 받아쳤다.

씨로 시작해 년으로 끝나는 모든 단어가 쏟아졌다.


불행한 순간이다. 그냥 멍하니 보는데도 음성이 불행했고, 공기가 불행했다.


딸아이가 엄마 말을 했다. 2년간 나도 함께 들었던 욕설.

학습이라고 해야 할까, 청출어람이라 해야 할까.


와중에 여자가 아들 양손을 꼭 잡고 섰다. 모순이라고 비난하고 싶었던 순간, 알아챘다. 아들 자세가 부자연스러웠다. 12살 정도, 엄마 키만 한 아들은 신체와 정신이 불편해 보였다. 고개가 한쪽으로 갸우뚱했고 걸을 때 왼쪽 다리를 절었다. 옆구리에 붙인 양손의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_

앞집 여자.

공기 중에 흩어졌던 음성을 2년 만에 마주했는데,

딸에게 미친년 소리를 듣고 섰다.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듣고 있다.


함께 듣던 욕이, 성악가 발성으로 뽑아내던 여자의 끔찍한 목소리가 새삼 고단하다.




사진 출처: Unsplash의 Edson Ros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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