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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4시

그리고, 배가 고프다

by 빌려온 고양이



배는 왜,

고플까.


사실 배고픈 상태를 아주 좋아한다.

배고플 때 나는 소리마저 좋다.

세면대 물을 뺄 때 꼴꼴대는 소리처럼 개운하고 온몸이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하지만 배고픔도,

속이 쓰린 상태가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뭐라도 집어넣지 않으면 주먹만큼 쓰리던 것이 온몸으로 번진다.

속이 텅 비어 가벼운 게 아니라,

아픈 상태가 되어버린다.

저항한답시고 따뜻한 보리차 한 컵을 넣어주지만

서너 시간 잠잠할 뿐이다.


주방이 집 앞 편의점 거리만큼 애매해진다.

-젠장, 먹어야 하네.-


결국,

참을 수 있는 즐거움이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변해버린다.



_

우린 그렇게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적당히 즐거운 공복 상태였다.

너무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았다.

서로 원하는 만큼 채워주지 못했고,

노력조차 하지 않지만

멀어지지 않을 만큼 딱 그 정도 거리였다.


적당히 허기진 상태.


그러나 공복이 오래되어 속이 점점 쓰렸고,

결국 무너졌다.


즐거운 허기가 계속될 수 없고,

언제든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우리가 헤어진 이유를 애먼 곳에서 찾아본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




사진 출처: Unsplash의 S. Laiba 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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