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삶을 사는 중이다.
하루에 7천5백 자에서 9천 자 정도의 글을 쓴다.
N도 아닌데 어쩌다 웹소설을 시작했다.
매일 연재를 하다 보니 글을 안 쓸 수 없다.
3개의 플랫폼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2개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같은 글이다.
플랫폼마다 선호하는 장르가 달라서 흐름을 파악하느라 여러 군데 동시에 게재했다.
그중 1개의 플랫폼에서 소위 얘기하는 주간 1페에 들었다.
20위 안.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랭킹을 신경 쓰며 쓴 글도 아니었다.
그냥, 다른 작가들은 하루에 몇 글자나 쓰는지 궁금해서 무작위로 랭킹에 있는 글을 클릭하려다 발견했다.
무슨 일인가.
물론 나는 내 글이 너무 재밌다.
나 재밌으라고 쓰는 글이니까.
그런데 읽는 사람도 재미있을 순 없다.
가끔 챗GPT에 묻긴 한다.
재밌냐고.
걘… 무조건 좋단다.
걘… 그게 문제다.
아무리 AI라지만,
너무 긍정적인 답을 영혼 없이,
장황하게 쏟아낸다.
아무튼 주간 1페라 하니,
그냥 클릭 수가 높고 관심작품이나 평가점수가 높았을 수 있지만….
남들도 재밌게 읽는다고 생각해도 될지….
매일 7천5백 자, 9천 자는 아주 힘든 일이다.
내가 브런치에 쓰는 글이 길면 천 5백 자 정도,
짧으면 700~800자 정도니까 7천5백 자~9천 자는 정말 긴 글이다.
그러다 문득 누가 써놓은 글을 보았다.
- 무라카미 하루키도 하루에 4천 자밖에 안 쓴다. -
그래?
찾아보니,
2천 자에서 4천 자의 글을 매일 쓴다고 한다.
그래…. 무라카미 하루키도 4천 자를 쓰는데,
내가 뭐라고 7천 자, 9천 자를 쓰고 있는가.
글밥도 못 먹는 내가….
물론 글밥을 못 먹으니까 더 열심히 써야 하는 게 맞지만, 소심하게… 5천5백 자로 줄였다.
한결 숨통이 트인다.
5천5백 자가 확실히 수월하다.
어떤 날은 김은희 작가인 양 12시간씩 앉아서 글을 쓴다. 내가 뿌려놓은 떡밥을 회수하거나 연결고리를 찾아내면,
순간,
'나 천잰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아주 딱 떨어질 때 그 쾌감이랄까.
그러다 미친 듯이 안 써지는 날 손을 놓으면,
장항준 감독이 딸에게 했던 말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아빠, 난 왜 소설을 끝까지 못 쓸까?"
"어른들도 마감이 있어야 글을 완성한다. 마감이 있어야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 데드라인이 있는 공모전에 글을 써봐."
이후, 딸은 청소년문학상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장항준 감독이 우리 아빠도 아닌데,
장항준 감독의 딸처럼 몸을 일으킨다.
데드라인이 있는 글을 쓰자.
매일 연재 시간 맞추고,
의무 글자 수를 다 채운 후,
완결을 치면 된다.
잠시 장항준 감독 가족같이 글을 쓰다가,
다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으로 돌아간다.
5천5백 자를 다 쓰고 업로드 예약을 걸고,
15km 러닝을 하고 돌아오는 일.
그와 같이 글을 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순 없어도,
그와 같은 하루를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글을 쓰고,
러닝을 하고,
돌아오는 것.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생을 사는 듯이.
사진 출처: 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