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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Aug 02. 2023

Ep.8 앙금의 화석, 화석의 잔해







때는 고등학생 1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던 날. 남동생과 밥을 먹고 있는데 전화 한 통이 울린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엄마 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고, 우리는 먼저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여보세요?”

발신자 표시 제한.


“........”

상대방은 말이 없다. 기분이 이상했다.

뚝.

전화가 바로 끊기더니, 또 곧바로 전화가 다시 울린다.


“여보세요! 전화를 하셨으면 말을 하셔야죠!”

“흐흐 흐흐 흐흐 흐... 주희니?”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앞에 있는 동생한테 전화기를 무작정 건넸다.


“받아봐, 누구냐고 물어봐 줘!”

“누구세요!”

뚝.



이상하리만큼 그때 촉이 딱 왔다.. 친부.. 인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목소리도 모르고 형태 정도만 알고 있는 내가 그런 촉을 받은 게 무서웠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친부한테 전화 온 거 같아.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화 왔는데, 엄청 기분 나쁘게 웃고 주희니? 하고 끊었어!! 나 너무 무서워!!”


놀란듯한 엄마도 일단 나를 진정시키고 말한다.


“우선, 할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가고 있으니까. 할머니 할아버지 가시고, 다시 얘기하자.”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 동생에게 친부 욕을 계속했다. 이제 와서 왜 전화가 왔지? 무슨 꿍꿍이지?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등등 계속 의문이었다. 기분이 더럽게 나빴다. 토할 것 같았다. 양육비도 안 주고, 친권도 포기한 사람이 아니! 나를 유기했던 인간이 나한테 무슨 낯짝으로 전화해서 내 이름을 부르는지 역겨웠다. 화도 났다. 그 전화를 시작으로 엄마와 나는 분열이 생겼다.





며칠 뒤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려가시고, 엄마와 새아빠 그리고 친부가 만났다고 한다. 내 번호를 알게 된 건 막내 이모와 친부가 우연히 만났는데, 이모가 내 사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고, 나한테 전화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 당시 나는 교정이 필요했는데, 엄마가 친부에게 아빠 도리 하고 싶으면 교정 필요하니까 그 정도만 해주고 내가 커서 성인이 되면 그때 다시 연락하라고 했다고 하고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그때, 새아빠는 내가 주희 아빤데 교정은 내가 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감사했다. 나를 유기한 그 양반한테 한방 먹인 거 같은 쾌감이 올라왔다.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건은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말해준 대로 지금은 새아빠랑 살고 있으니 성인이 되어 네가 만나고 싶으면 만나는 거고, 만나기 싫으면 안 만나도 된다고 그렇게 끝인 줄 알았다.


그러고 며칠 뒤 그 당시 유행하던 커뮤니티 싸이월드 하는 게 있었는데, 로그인을 했더니 알람이 뜬다. 도토리 100개가 선물로 도착했습니다. 도토리 100개면 현금 만 원이고 그걸로 내 커뮤니티를 꾸밀 수 있는 돈이다. 친부가 내게 보낸 거다.

참나, 18년 만에 연락 와서 이제 와서 아빠 노릇을 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내 뒷조사를 해서 어떻게 컸는지 감히! 보겠다는 심상인가.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어떻게 자랐는데 감히 이제 와서 뭘 하다 이제 나타나서는 왜 내 앞에 나타난 건지 화가 났다. 싸이월드 프로필에는 메일 주소가 적혀있었다. 전화로 하는 건 무서웠다. 조폭이었다고 하니, 말을 섞기도 싫었다. 메일을 적었다.


불편한 내용들을 마주하려니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래도 적어내려갔다. 호칭은 뭐라 해야 할까부터 서두 없는 말들로 원망의 글을 적었다. 너무 어린 마음에 상처 입은 마음들이 투정으로 보일까 봐 최대한 어른처럼 썼던 것 같은데, 그게 아직도 분하다. 그때 마음은 이랬다. 감히 당신이 뭔데 또 나타나서는 파멸시키려 하느냐고, 무슨 낯짝으로 아빠 노릇을 하려 하냐고, 온갖 비난과 상처되는 말과 비수를 꽂는 말들을 적어내려갔다. 그리고 회신을 받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투성이다.


메일을 이어나갔다. 이제 와서 아빠 노릇을 하고 싶거든 나 이런 공부가 필요하니, 나 유학비를 대라. 여태 안 준 양육비 내놓고 얘기해라. 용서를 빌어라. 등등


내가 받은 상처들을 치유해 내라 등 여러 통의 메일에 있는 힘껏 내 감정을 담아 보냈다. 도망가려는 낌새가 보였다. 할머니한테 듣던 대로였다. 책임감이 없음은 물론, 사기꾼 기질이 뼛속까지 박혀있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난 어떻게든 저 인간을 파멸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이었다.


그 인간의 돈을 다 빼앗아 엄마를 주고 싶었다. 이제라도 보상받으라고 하고 싶었다. 통장 하나가 있었는데, 거기로 돈을 보내라고 했다. 액수도 상당했다. 50만 원을 보내라. 10만 원을 보내라 등 이유도 상당했다. 싸이월드에 내가 찍은 사진 몇 장들을 올려놓은 게 있었는데, 카메라를 사주고 싶다고 하길래. 그것도 받아냈다. 직접 만나기는 두려워서, 어디에 맡겨두고 가라고 했다. 그 당시 유행하는 옷들과 모자 스웨터 비싼 손목시계들을 말했다. 말한 그대로 구매하고 백화점 한 매장에 맡겨두고 가더라. 그렇게 조금씩 받아냈다. 잘못된 방식으로 나는 친부에게 돈을 요구했다. 거짓말을 하면서 계속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은 친부가 내게 돈을 보내지 않고 숨으려 하자 ‘사랑하는 아빠에게’ 하며 메일을 적었다. 그때 당시 마음은 어떻게든 돈 만 받아내면 된다. 달콤한 말이든 욕이든 원망이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메일을 보냈던 기록들을 인쇄해서 차곡차곡 모아놨었다.


내가 이랬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양육비.


엄마 일기장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친권포기각서를 보았고, 매달 양육비 50만 원씩 성인이 될 때까지 지급하겠다는 각서였다. 엄청 어릴 때 이혼을 했으니, 대충 계산을 해봤다. 내가 3-4살 때 이혼했다고 하면 16년간 매달 50만 원씩 지불했어야 했는데, 그럼 1년에 600만 원 일 테고, 받아야 할 돈이 한참이었다.


엄마한테 나 이렇게 해서 못 받은 양육비 다 받아냈다고 말해주려고 했었다. 그렇게 몇 개월간 이어진 나의 의도는 만행이 되었고, 엄마에게 큰 실망감, 큰 배신감까지 주게 되었다. 엄마에게 말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쳤고, 내가 다 보여주고 설명하려고 했던 인쇄된 메일 내용들은 오해가 되었다. 엄마는 듣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빠에게’라고 적은 그 메일을 읽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엄마가 그 글만 보고 나를 친부와 똑같이 여겼다는 사실이 제일 억울했다. 엄마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나도 억울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닌데 엄마 마음대로 해석하고 딸인 나와 절연을 하고 20살 때까지만 키울 테니, 믿는 구석(친부)한테 가라는 말도 가슴이 찢어졌다. 나를 이해할 줄 알았다. 나도 상처를 받았겠지만, 그 행동은 내가 엄마의 과거를 건들게 된 거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선생님은 매일 내게 전화해서 나를 기다렸고, 학교를 가지 않으니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애들을 기피했다. 두 번째 왕따다. 수학여행을 가던 날도 난 혼자였다. 엄마와의 불화는 고통스러웠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때의 사진을 보면, 어둠은 물론 얼굴 자체가 흑색 그 자체였다. 친부라는 인간이 또 파멸시켰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프고 병원도 자주 다녀야 해서 우리는 한 동네에 외갓집 가족들이 모여살았기에, 가족끼리 모임도 많았는데, 가족들끼리 만나도 나는 엄마랑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고1, 고2, 고3, 대학교 1학년, 2학년이 되던 날. 엄마가 얘기하자고 불렀다.    


      






“엄마! 내 얘기 좀 들어봐! 왜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 마음대로 해석해! 엄마 제발, 제바알!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진심이 아니라고! 왜 말할 기회조차 안 주는데!”


4년간 울부짖던 소린데...

4년 만에 불러서는........


“얘기 좀 해.”

“무슨 얘기.”

“계속 그렇게 얘기 안 하고 남처럼 살 거야?”

“여태 안 들어줘놓고 무슨 얘길 하라는 거야. 무슨 얘길 듣고 싶은 건데 엄만.”

“나와. 일단 나와서 얘기해.”


4년 동안 눈도 안 마주치고 벌레보다 못한 투명 인간으로 취급하더니 무슨 얘길 듣고 싶은 건지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할 얘기가 너무나도 많았지만 목구멍 뒤로 삼킨지 오래라 별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냥 이 상황을 모면할 정도로만 털어놨다. 상황은 유야무야... 정리되었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이날의 얘기는 더 이상 수면 위로 꺼내지 않는다.


이때 어떻게든 얘기를 했어야 했을까.

앙금은 화석이 되고 아무리 부수려고 해도 화석의 잔해는 계속 남아있었다. 





* 여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과거를 드러내니, 발가벗은 몸으로 서 있는 기분이고, 그때로 돌아가 글을 쓰니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참으로 묘합니다. 글이 주는 힘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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