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수영이 낫지. 뭐라도 하자!
여자치고 덩치와 키가 꽤 큰 나는 몸무게 앞자릿수 ‘5’를 가져본 건 초등학교 이후 단 한 번도 없다. 174cm에 고등학교땐 60kg 후반대, 대학교땐 70kg 초중반대를 유지(?)했다. 굳이 굳이 50kg대를 만들지 않았다. 원체 근력량이 상당히 좋아서 70kg 후반대를 달리던 때에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체격이었다. (옷빨도 나름 잘 받아서 굳이 살을 뺄 필요성을 못 느꼈다.) 운동을 좋아하진 않지만, 운동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운동을 따라다닌 게 아니라 운동이 나를 따랐다.
초등학교 때 체력장 1급 그 실력으로 체육선생님의 제안
계주선수, 수영, 태권도 / 여자투포환 충청남도 도대회 3위
초등학교 4학년 때 신체검사 후 며칠 뒤 시흥중학교에서 청소년 여자 농구부 스카우트 제의
어릴 적 내가 했던 운동들이다. 어렸을 땐, 좀 여성스럽고 소녀답고 여리여리한 소녀이고 싶었다. 또래 남자애들보다 손도 크고, 발도 크고,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니. 남자애들은 내 별명을 ‘본좌’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교통사고가 나서 한 번은 한의원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의사가 말하길.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체격을 들었다. 나 원참. 태릉선수촌이라도 갔어야 했나. 허허.. 참
이런 스펙, 이런 경험들이 쌓이니 나는 내가 운동 안 해도 건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독립을 하고 첫 자취를 하던 20대 끝 무렵. 역대 최고 몸무게를 찍게 된다. 90kg..... 친구들한테 내 몸무게를 말하면 절대 그렇게 안 보인다고 나를 안도시켰다. 그 말을 또 믿었을까 나는 점점 더 나태해진다. 체력은 떨어질 때로 떨어지고, 매일 누워있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또 역대 최고의 몸무게로 임신을 하게 되었고, 또 최고의 몸무게로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10년 만난 남자친구와의 몸집 차이도 매년 달라졌다. 옆으로 키가 크고 있더라. 그런 몸으로 출산을 하니 우울증은 말로 할 것도 없으며, 자존감은 더욱 하락되고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판단까지 내려. 이러다가 결혼생활 5년도 안돼서 섹스리스가 될 거 같았다.
여태 살면서 몸이 아픈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철분 수치는 낮아지고 이 덩치에 빈혈을 겪게 되며, 출산을 하고 나니 고관절에 통증이 오고, 모유수유로 인해 허리에 통증이 생기다가 척추협착증 진단을 받게 된다. 진단을 내리는 의사조차 살 빼라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한다.
나이 30 초반에 척추협착증에 디스크라니 그것도 살 때문에.
이렇게 내 몸을 둘 수 없다. 과거에 묶여 부모를 탓하며 내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도 모자라 이젠 내 몸까지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아이가 두 돌을 지나 3살, 4살이 되면서 활동범위도 넓어지고 걷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이젠 뛰어다니는데, 아이랑 놀아줄 수도 없는 허리가 된 거다. 그걸로도 모잘라 이제는 무릎통증까지 동반하다니. 나를 위해서도 있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빼야 한다. 이것은 적색신호다.
걷기가 가장 좋은 운동이라길래 걷기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과체중으로 걷기랑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무릎이 아프고 관절에 무리가 온다. 그렇다면, 필라테스를 하자. 필라테스를 하면서 몸을 쓰는 방법을 배웠다. 고관절을 사용하는 법도 몸에 익혀졌다. 하지만 코어 힘이 없으니 필라테스 수업 때마다 쓰는 나의 기구는 덜덜덜 떨리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7층 우리집까지 매일 걸어 올라갈까? 생각도 했지만, 미처 그것은 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결심한다. 식단을 하자. 우선 20kg만 빼고 뭐든 하자. 마음먹었다.
다행히도 추진력 하나는 끝장나는 내가 바로 할 수 있는 건 식단이었다. 다이어트 음식을 꽤나 먹어본지라 대충 어떤 식단이 살을 빠지게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내가 알던 지식은 모두 요요를 일으키는 식단이었다. 그럼 먹던 양에 2 수저씩만 줄여보자. 그리고 비건레시피를 찾아보자. 육아를 하고 일을 하며 시간이 없는 내게 눈에 띄는 식단 하나가 있었다. 바로 밀프랩!
일주일치 도시락을 싸놓고 먹고 싶은 도시락과 먹고 싶은 드레싱을 만들어 먹었다.
빵을 먹고 싶을 땐 호밀빵과 계란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고, 외식을 할 때면, 밀가루나 자극적인 음식보단 쌀국수나 라이트 한 메뉴로 선정했다. 변비를 막기 위해 요거트랑 블루베리를 매일 달고 살았다. 밀가루 빵이 먹고 싶거든 샐러드 메뉴에 추가해서 먹었다. 6/22일부터 시작했으니, D+43일 차다. 나는 총 6kg를 감량했다. 예전 같았으면, 한 달 동안 영양가 없는 식단만 해서 아마 10kg 이상은 감량했을 텐데, 롱런하면서 빼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하니 천천히 빠진다. 오로지 식단으로만 유지해서 뺀 살이다. 식단을 하다 보니 점점 좋아지는 증상이 있다. 배가 부른 느낌이 싫고, 야식 먹고 다음날 붓는 느낌이 짜증 나기 시작했다. 군것질을 아예 하지 않으며, 배고프지 않아도 먹던 습관들이 사라졌다. 고작 6kg만 빠졌을 뿐인데 한 달 보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게 너무나도 많다. 이 기세를 이어 동네에 있는 체육센터 수영장에 등록했다. 과체중의 몸에 수영복이라 생각만 해도 너무나 부끄러웠다. 나만 쳐다보면 어쩌지. 걱정되는 마음에 수영장 구경을 10번도 넘게 갔다. 몸뚱이도 뚱뚱한데, 저 안에서 버벅거리면 얼마나 답답해 보일까 걱정 투성이었다. 10번 정도 가보니, 대충 수영장 안에서 동선이 익혀졌다.
8월, 수영을 등록했다. 그리고 강습이 시작되기 전 몇 주간은 자유수영 시간에 꾸준히 나갔다. 50M 레일에서
30M 정도밖에 못 가고 한번 서서 쉬다가 다시 가기를 반복했다. 자신감이 조금 떨어져 차라리 할머니들이 많이 하시는 아쿠아로빅을 등록할까도 진지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유형 - 평영 - 배영 - 접영의 순서로 강습하는 수영을 나는 배영까지는 할 줄 알기 때문이다. 하하
근데 안 한 지 너무 오래되어, 다시 기초부터 배우고 싶었다. 초급반 등록! 가격도 저렴하다. 48,000원.
강습료는 저렴하지만 수영장비는 1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수영하는 사람들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다이소에서 수영가방도 득템 했다. 수영장 가방을 꾸미고, 집에서 수영복을 입고 다니며, 자신감을 증진시켰다.
3살 아들내미가 엄마 멋지다고 해준다. 좋아! 엄마 날씬한 엄마가 되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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