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대한 자아성찰 중입니다.
고민 많으시겠지만,
어느 때처럼 이 평범한 하루도 끝나갑니다.
나중에 뒤돌아보면 잔잔한 물결이거나, 고요한 물음만 남아있겠지요. 아무런 대답도 필요치 않은 물음들이요.
이만큼 살아보니 모든 물음표에 답하지 않아도 됐음을 깨닫습니다. 무례하고 불친절했던 것엔 침묵으로 상대했어도 됐고요,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찾지 못한 것은 그대로 비워놔도 됐음을요. 모든 걸 품으려다 보니 이것저것 놓치곤 했습니다. 가끔은 와르르 무너지기도 했고요. 오늘도 어느 때처럼 평범하게 고민 많으시겠지만, 하루를 이렇게 끝내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셔도 아주 괜찮습니다.
서미태 작가님의 "원고"라는 글에서 아주 감명받은 구절이다.
나는 요즘 사람이 힘들다.
1. 몇 년 전 자기 몸을 함부로 굴리는 친구가 있었다. 이성에게 마음대신 몸을 주는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때도 비슷한 행동으로 나를 실망시켰고, 나는 그 술집에서 나와 이 친구에게 온갖 욕을 퍼붓고는 인연을 끊었다. 5년 정도 지났을까. 그 친구가 나를 다시 찾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2. 대학교 졸업 후 가장 친한 친구의 가장 친한 후배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늘 놀기 위해 만났다. 우정을 쌓고 연을 쌓기보단 나는 그 친구를 그냥 놀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던가. 10년이 지난 지금, 주기적으로 만나고는 있지만 무엇을 위해 만나는지 의문이 든다.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의문이 들던 시기가 왔었다.
결혼식이 끝나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뭉개듯이 하고,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고, 다른 친구와 비교되게 나를 치사하게 만든다. 이 친구와의 인연은 끊어야 하는가. 이어가야 하는가.
3.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만들게 했던 사람이 있다. 어쩌면 내가 의도한 걸 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의 자녀가 돌잔치라고 한다. 아무 말 없이 돌잔치 초대장 하나를 툭 건넨다. 기분이 매우 상했다. 이쯤 되면 나는 예민함의 극치의 개복치 혹은 복어 같은 사람인 건가 의문이 든다. 나는 이런 나의 분노버튼들이 상당히 많다. 그들은 내게 공격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 혼자 상처를 받는다.
별일 아닐 수 있겠지만, 이 별일 아닌 일들이 내겐 유난이라는 게 너무 싫고, 이런 내가 너무 싫은 요즘이다.
나를 또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다.
곧이곧대로 기분 나쁜 일들은 말하며 살아왔다. 근데, 그게 이제 내 옆에 사람을 없게 한다는 걸 알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후련하면 좋으련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나는 혼자 끙끙 앓고 몇 날 며칠을 혹은 몇 달을 그 굴레 속에서 계속 쳇바퀴만 돌리고 있다. 법륜스님의 자아성찰 상담을 자주 본다. 인간은 100%라는 게 없다. 90%가 좋은 게 있으면, 친구라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고, 윤리와 도덕을 지키기 이전에 인간은 자기가 생겨먹은 대로 살아가는 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 살고 싶은 마음 안에 괴리감이 존재한다.
친구 사귀는 법을 제대로 겪지 못하고, 친구와의 분쟁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30대가 다 되도록 사람이 어렵다. 친구하나 제대로 된 사람이 없다. 힘듦만 공유하는 친구, 놀기만 하는 친구, 음주가무만 필요한 친구, 감정쓰레기통 친구, 잠시 사귀었다가 떠나가는 친구, 그냥 방랑자 같은 존재들이랄까.
인연은 소중한 거라던데 나에게 인연은 일회용이었다. 오래 유지할수록 불안한 존재들 같은 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근데 나는 그 사람들과 왕래하는 방법을 모른다.
어렸을 땐 사회로 나가 적응하는 방법을 배워야 된다고 한다. 나는 뭘 배운 걸까.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지. 허들이 있을 땐 벽을 쳐야 하는지. 벽을 허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지만 하고자 할 때는 나노단위로 나눠서 나에게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럴 때 나는 그 누구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정신과가 답인 것 같고, 자학만이 나를 일깨우는 방법이라. 이번엔 좀 다르게 나를 보고 관찰하고 집중하고 깨우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