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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Jan 29. 2024

육아서라고 하지만 결국 내게 적용되는 말.

하브루타 육아서를 읽고

여느 때와 같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하원하러 간 길이었다. 평소 책 표지를 보고 책을 고르거나 제목과 소제목에 흥미가 들면 책을 구매하거나 빌리는 편이다. 오늘 어린이집 입구에서 아이를 기다리는데 이 책이 눈에 띄었다. 하브루타 육아라.. 요즘 내 주변에서 하브루타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고 들렸기에, 흥미로운 제목이라 대여를 신청했다.



아이를 재우고 밤 10시 반경 나는 이 책을 펼쳤다. 첫 장부터 술술 읽히는 게 육아서라고 적고 내게 필요한 책이라 읽어본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내 유년시절의 부모를 용서하게 된다. 또 나를 채찍질하기 전에 나를 보듬어 주고 내가 내 아이에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의 원인을 알게 된다.


나는 늘 이기적인 아이, 자기중심적인 아이, 그렇게 태어난 천성이 그런 아이로 불렸다. 내 엄마에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선 이렇게 말한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어른처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생각을 자기 자신에게 맞춘다. 이 현상까지는 자기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부모가 과잉보호하거나 지나치게 간섭하게 되면, 이런 특성이 더욱 강화된다. 자기중심적인 아이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협업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치유받은 부분이다. 나는 아이를 갖게 되고 키워가면서 매일 나를 위로하고, 나의 엄마를 이해해 본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모의 행동과 내 상처가 부딪히게 될 땐 깊게 새겨 있던 상처가 다시 욱신거린다.




책을 읽다가 어제 신랑과 밤에 잠깐 나눈 얘기가 생각이 났다.


"나는 내 부모가 나를 두 번이나 버렸다는 생각에 나는 내 존재가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너무 커서 친구를 사귈 때도 사람을 사귈 때도 내가 무슨 일을 할 때에도 겁부터 먹고 벽부터 만들던 습관이 생겼었는데, 그게 너무 오래되니까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 근데, 너를 만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랑 떨어져서 사는 지금 나는 나를 쳐다볼 수 있고, 나를 사랑하고 아낄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 당신은 부모의 이런 점은 하지 말아야지 라거나 혹은 이런 건 내 아이한테 하지 말아야지 하는 부분이 있어?"


- 나도 당연히 있지, 근데 당신만큼 내 자아에 크게 문제가 된다거나 그런 건 없지만, 나도 있긴 있지.


이런 얘기들로 신랑과 2시간 정도 얘기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해 간 쯔음에 신랑이 나에게 한마디를 한다. '나는 당신이 앞뒤 꽉 막힌 대화법을 시도하고 내가 당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옛날 옛적 기억들을 가지고 와서 나의 의견을 묵살시킬 때, 진짜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었는데, 지금 당신 얘기를 들으니까 왜 그런 화법을 써야만 했는지 당신을 만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해가 간다.'라고 했다.


깊게 새겨져 잊고 있던 상처의 욱신거림이 눈 녹아내리듯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나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 기억에 나는 학교에서 있던 일 혹은 나의 요즘 고민거리, 내가 하고 싶은 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얘기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일기 쓰는 걸 좋아했던 것 같고, 어쩌다가 열리는 글짓기 대회들이 좋았다. 내 생각을 내 마음을 오롯이 적을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는 곳. 내 얘기를 들어주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른들은 줄곧 그런 말을 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글을 잘 쓴다. 심금을 울린다. 눈물이 난다. 문장을 서술하는 서술 능력이 뛰어나다. 재능이 있다.라고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에 대해 벽을 쌓아 올리거나 혹은 대인관계를 수직적으로만 대하던 내게 가장 편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사람은 누군가와 불편한 관계를 갖는 순간 행복지수가 떨어진다고 한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단 한 번도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다. 마음을 주면 너무 많이 줘서 풍선처럼 부풀다가 터져버려 사라졌고, 마음을 안 주기엔 내 마음이 답답해서 터져버리기 일쑤였다. 친해지고 나면, 함부로 대하거나 말로 상처를 입혀 상대에게 지울 수 없는 말실수를 했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때 자주 왕따를 당했다. 왕따를 당하면서도 다행인 건지 마음은 힘들고 아프고 회피하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른 것들과 친해졌고,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친구에게 상처를 입혀놓고는 그 친구에게 가서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니?라고 캐묻거나, 왕따를 시키지 못하도록 했었다. 문제점이 있으면 달려들어 강압적으로 해결하곤 했다. '그래서 도대체 네가 날 싫어하는 이유가 뭔지 말해봐. 나 좋아해 달라고 안 할 테니까 싫은 이유는 말해봐'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었고, 다시 정리해서 말해보자면 나는 왕따에 대한 타격감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분명 무리 집단에서 불편감은 많이 느꼈던 걸로 기억난다. 하지만, 금방 회복되었지만 내가 해결하던 방식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때, 만약에 내 주변에 있는 어른 중 나를 보살펴 준 어른 중에 한 명이 사람 사귀는 법, 친구 만드는 법에 대해 알려주거나 내 얘기를 누군가 들어줬다면 나는 지금처럼 이렇게 아프지 않진 않았을까 하면서 탓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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