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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무드 May 02. 2024

내 생일 멋 내는 방법

어제 근로자의 날 휴일을 맞이하여 아이와 집 앞 도서관, 공원 산책을 나가려고 했다. 아침에 퇴근한 옆지기는 내 생일 하루 전날 미역국을 끓이기 바쁘다. 소고기를 넣고 어떻게 해야 되냐며 이번 미역국은 절대 망하면 안 된다고 SOS를 청한다.


"고기를 넣고 참치액을 넣고 조금 볶아준 뒤, 미역을 넣으면 맛있더라고. 나는 이렇게 해~" 하며 알려줬다. 알겠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본인의 요리하는 뒷모습을 사진 찍어 달라고 자세를 잡는다. 하하. 그래 귀엽고 기특해서 찍어준다.



"과장님이 그랬는데, 과장님은 평소엔 아내분한테 매일 밥 얻어먹어도 아내 생일만큼은 꼭 차려주신다고 하더라 근데 나는 자기랑 생일밥은 사 먹었어도 한 번도 차려준 적이 없더라고 그래서 이번만큼은 꼭 내가 해주고 싶었어 지금 기분 너무 좋으니까 사진 찍어줘!"



크크. 이 정도면 뭐 사진 찍으려고 내 생일상 차려주는 건가 싶었지만 그만큼 이게 그 정도로 신나는 일이라는 그의 모습이 참 고마웠다. 아이와 셋이 기분 좋은 아침상을 받고 맛있는 미역국을 완국 하고는 피곤해할 그를 두고 아이와 둘이 산책을 나가려고 했다.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아이를 보고는 옆지기도 같이 나선다고 한다. 킥보드를 끌고 셋이 오전 산책을 나갔고, 나는 대여할 책이 있어서 잠시 도서관 2층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가는 나를 보고 아이가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 나도 도서관 갈래! 일루와바!" 하더니 아빠 손을 이끌고는 나와 저번주에 갔던 1층 어린이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신발을 벗고 아빠를 안내한다. 곧이어 내가 2층에서 내려왔고 나를 발견한 아이가 유리창을 두드리며 "엄마!" 하고 외치고는 다시 나온다. 책은 읽지 않았지만, 도서관에 들어간 행동이 너무 기특해서 칭찬을 했다. 어깨가 으쓱해선 다시 킥보드를 타고 공원 산책을 한다.


이 두 남자를 보니 더 행복해지는 휴일이었다.


30대가 되니 생일날 많은 축하보단 가족끼리 밥 한 끼 먹는 게 더 좋다. 그리고 내가 나를 위해 하는 일은 엄마한테 전화하기. 갖고 싶던 생일선물 소소하게 사주기! 정도다. 아! 한 가지 더 있다. 생일이 끝나기 30분 전 그러니까 밤 11:40분쯤 누워서 내게 축하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내게 태어나줘서 잘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내 생일 멋 내는 방법'이다.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특별한 것 하나 정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시작한 일인데, 이 일도 몇 해 해보니 재미있다. 잘한 일이다.


나이가 드는 만큼 소중하게 나를 가꾸어가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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