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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Mar 05. 2022

3월의 설렘 주기를 찾아서

3월이 주는 한정적인 설렘에 대하여


오랜만에 순이랑 좋아하는 카페에 가던 날. 긴 겨울이 끝나감을 햇볕이 먼저 알려주는 듯한 간질간질한 날씨였다. 카페 창밖으로 제 몸보다 큰 가방을 멘 아이들 무리를 만났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척 흥분된 모습이었다. 문득 시계를 보니 3월 3일이었다. 어쩌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날짜일지 모르지만 3월은 좀 다르다.




나에게 3월은, 더 정확히 3월 2일 정도는 일년 중 가장 설레는 날이었다.

삼일절을 보낸 다음날인 3월 2일은 전국의 모든 초, 중, 고, 대학생들이 '입학'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초등학생 때는 설렘보다는 긴장이 더 가득했었다. (그때도) 쿨하지 못한 학생이었던지라 매년 3월 2일이 다가올 때마다 새로운 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에 대해 무작정 겁을 먹었다.

새로운 반에 입성하고 주위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얼굴을 볼 때,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었다.

월요일 아침마다 손톱 검사와 실내화 청결 검사를 했었다. 마음이 급했던 나와 친구들은 하얀 분필을 찾기도..


그러다 중학생이 되면서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남녀공학을 다녔던 나에게 중학교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과도 같았다. 열 네살의 3월 2일, 반에서 가장 키가 작았던 나는 맨 앞줄에 자리를 배치받았는데 내 옆에 앉은 앙증맞은 남자애가 나만큼이나 숫기가 없었던 것이 생각난다.


남녀공학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고자 했던 한 선생님은 등교하는 순서에 따라 데일리로 짝꿍을 정할 수 있는 요상한 룰을 만들기도 했다. 교실판 <나는solo> 정도의 숨 가쁘고 긴장되는 풍경..! 이성에게 초콜릿 한 번 받아보지 못했던 나는 늘 조마조마하며 등교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사춘기 여학생이 받아들이기엔 잔인한 교칙이지 않았나 싶다.



가상세계의 유재석이었던 나는 sns로 친구 만드는 것엔 자신이 있었다. 아마도 메타버스의 시초는 버디버디가 아니었을까?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그런 긴장감이 금세 증발해버렸다. 일단 나는 여고에 진학하기도 했지만(^^).. 내 생애 가장 즐거운 시절을 보냈던 공간이 바로 고등학교였기 때문이다. 아침 자습 시간부터 야간 자율 학습 시간까지 쉼없이 웃었다. 참을 수 없는 웃음에 벌도 많이 서고,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잠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행복했다. 그리고 그때 내게는 3월 2일이 두렵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는 이상한 안정감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10년 차 학생으로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었기도 했지만, 낯설지 않았기에 내가 먼저 다가갈 수도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3월의 설렘 주기는 조금씩 짧아져 갔다. 극도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묘한 설렘은 보통 여름이 되면 사라지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떨기는 했었나 싶을 만큼 무뎌지고 익숙해졌다.

새로운 학년으로 올라가고, 반이 바뀌며 친구와 헤어지게 될 때 누군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주변인으로 인해 내 세계가 조금씩 확장될 때마다, 센치해지는 연말은 피할 수 없었다.




도로를 열심히 뛰어가는 초등학생들을 보며 3월의 설렘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부러워졌다. 직장인 7년 차, 지금까지 유효할지 모르는 그 한정적인 설렘을 더 늦기 전에 찾아본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짧은 설렘으로 최고로 센치한 연말을 보내본다면 또 어떨까?



복도를 뛰어다닐 때마다 헤엄치듯 통통 떠오르던 친구의 티니위니 가방. 잘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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