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ay Mar 27. 2022

잘 살았다가 못 살았다가 한다

불안한 일상을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


나는 사나흘에 한 번꼴로 불안하다. 기쁘면 기쁜 대로 불안하고, 걱정이 되면 걱정이 되는 만큼 불안해진다. 어쩌면 불안에 사로잡혀 사는 걸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어쩌면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불안한 DNA를 갖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유년 시절 내 모습은 마음껏 웃기보다는 어물쩍 울상 짓기가 익숙했기 때문에. 지금은 이것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그리고 그 어린이는 커서 결혼을 했고, 신랑은 결혼식 축가로 '걱정말아요 그대'를 불렀다고 한다..)


어쨌든 나는 드문드문 잘 살았다가 또 드문드문 못 산다. 잘 살았다가 못 살게 되는 과정은 이렇다.


a.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b. '어떤 일'이 생긴다. -> 일의 종류는 건강, 가족, 미래, 과거, 회사, 꿈, 취미, 관계 등 다양하다.
c. '어떤 불안'이 나타난다. -> '어떤 일'로 인해 수일간 혹은 수십일간 숙면 중인 '불안'이 깨어난다.
d. '어떤 일'이 '어떤 불안'에 잠식당한다. -> 일은 해결되지 못한 채 불안에 지배당한다.
e. 불안한 일상이 시작된다.


보통 b의 '어떤 일'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된다. 깔끔한 답을 얻진 못하더라도 반드시 답은 있다.

그럼 '어떤 불안'은? 아쉽게도 불안을 완벽하게 이겨내는 비법은 없다. 불안이 생기는 명확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똑 부러지는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는 매번 불안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행해져 가는 인간일까? 다행히도 불안이 생기는 시나리오의 반대에는 불안이 사라지는 시나리오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까지 내가 살아있는 이유가 되어준다. 못 살았다가 잘 살게 되는 시즌/시기/시점은 명확하다. 어느날 문득, 불안의 감정이 사라지는 그 지점에서 평화는 다시 시작된다.


왜 불안이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사라진 불안이 영영 사라진 게 아니라는 사실만 중요할 뿐이다. 수많은 곳에서 건져낸 여느 희망적인 방법들 보다, 평화와 불안이 공존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나를 살린다.


평화로운 일상이 다가오면 마음껏 웃고 즐기면 된다. 반대로 불안한 일상이 곁에 오면 차분히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또 웃고 즐기는 날이 온다. 지금 잘 사는 이 순간도 계속되지 않고 지금 못 사는 이 순간도 영원하진 않다. 사람들은 그냥 잘 살았다가, 못 살았다가 한다. 힘이 조금 빠지지만 그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3월의 설렘 주기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