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고 싶었던 걸까, 채우고 싶었던 걸까

그날의 다정함이 있던 이유

by 졔하


마음이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자꾸 다가가고,

쉽게 내려놓지 못한 다정함을 오래 품는다.

그것이 상대에게 건네는 위로였는지,

나를 위한 결핍의 반응이었는지.


중학생 시절, 어느 날부터인지

같은 반의 한 친구가

머물 곳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교실에서도, 급식줄에서도, 운동장에서도

늘 어딘가에 걸쳐지지 못했다.


그날도 그랬다.

오후 4시를 막 넘긴 시간,

노을빛이 복도 바닥을 길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유독 그 아이가 서 있는 자리는

빛이 머물지 않는 것처럼 어두워 보였다.



웃으며 짝지어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로,

복도에서 신발을 꺼내 신는 모습을 보았다.

작은 체구보다 더 움츠러든 어깨,

유난히 무거운 발걸음,

울음을 간신히 눈 끝에 매달고 있는 얼굴이

내게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은데…’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그날따라 이상하게 강하게 밀려왔다.

그래서 그 조용한 복도의 끝으로 걸어가

작게 말을 건넸다.


ㅇㅇ야, 나랑 집에 같이 갈래?


갑작스러운 말에 그 애는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짧은 순간이, 유난히 더 길게 느껴졌다.

말없이 흐르던 공기 속에서도

조용한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그러다 이내, 아주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로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나 혼자만 알고 있던 외로움을

그 아이의 얼굴에서 본 것 같았다.



그 이후, 예상하지 못했지만,

내가 속한 무리는 내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고,

작은 험담들이 슬그머니 내 등 뒤를 따라다녔다.

상처가 안 되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것 같다.

그때는 그냥,

머물 곳 없는 그 애의 마음이

내게 아릿하게 걸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성격이 유별났던 것 같다.

누군가 보기엔

무슨 정의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혼자만 착하고 양심적인 척 보였을 수도 있다.


그 무리들도 나를 불편하게 생각했을 거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은 그 시간의 입장에서

그 애들도 이해하게 된다.


내가 내민 단순한 마음조각이

누군가에겐 오해가 되고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걸,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조금만 눈빛이 어두워도 마음이 쓰였고,

그 안에 시린 계절이 있는 건지 궁금했다.


‘잘 보이고 싶어서’ 보다는

그저 아파 보이는 마음을

가만히 지나치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에 스며드는 걸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어린 날의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들켜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내가 건넨 “같이 가자”는 말은,

어쩌면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같이 가자”는 말을 듣고 싶었던

마음의 그림자였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부터

고민하는 편이다.

그건 때때로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만,

그 복잡함 속에 있는 작은 따뜻함을

지니면서 삶을 살아내고 싶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겠거니 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건

상처와 서투름까지 함께 껴안는 일이다.

나는 되도록 그 일을 피하지 않는 편이고,

어쩌면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마음의 방향이 아닐까 싶다.




물론, 모든 관계가 그때처럼

다정하게 머물지는 못한다.

지금도 가끔,

나를 요동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다정함으로는 닿지 않는 거리.

애써도 멀기만 한 마음들.

그럴 때면 문득,

그날 내가 건넨 다정함이

정말 그 애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 스스로를 안도시키기 위한

내면의 결핍이었는지 생각한다.


그럼에도,

단정할 수 없는 마음 한편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다.

그 순간, 내가 내민 그 마음은

나에게도 꼭 필요했던 다정함이었다는 것.


그게 위로였든, 결핍이었든

어쩌면 내가 건넨 다정함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런 나를 마주하기 위한

조용한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와도 괜찮아. 너 곁에도 누군가가 그렇게 다가와 줄 거야.


같은 위로 말이다.




[ 작은 메모 ]


그날 그 친구와는

십몇 년이 넘는 시간을 친구로 지냈다.

청소년기의 결을 함께 통과했고,

어른이 되어가는

이십 대의 무수한 계절들을

나란히 걸어갔다.


우리는 누구보다 많이 부딪혔고,

서로의 미성숙함을 주고받았다.

금세, 다시 마주 앉아 화해했다.

힘든 순간을 꺼내놓았고,

진심껏 아끼고 위해줬다.


종종 그 친구는

그 복도 끝에 서 있던 우리를

기억해 꺼내며,

내게 고마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 역시

그 친구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고,

말없이도 위로받았기에

괜히 낯이 뜨거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하지만,

긴 우정이 언제나

평온한 강물처럼 흐르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감정이 넘치고,

어느 날은 서로의 등을 돌린 채

침묵 속에서 걸어가야 할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삶을 바라보는 창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화의 리듬도 조금씩 어긋났고,

자연스레 서로의 계절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 시절 함께였던 나날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따금 나를 멈춰 세운다.


그 마음의 조각을

이렇게 글로 꺼내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이상하고, 따뜻하다.

시간 속에 묻어 두었던 장면 하나가

오늘의 나를 가만히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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