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마음을 건드릴 때
며칠 전, 퇴근길에 동네를 걷고 있었다.
하루를 버티고 나온 몸은 말을 잃고
생각 없이 발길을 옮겼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의 시간.
푸른빛과 노을빛이 포개지고,
하루의 끝과 저녁의 시작이
나란히 앉아 있는 듯했다.
동네 교회 화단 앞,
형형색색의 꽃들이 조용히 피었다.
그 앞에, 오랜 시간을 머금은
두 어른이 나란히 서 있었다.
말을 주고받는 듯했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마치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듯,
그저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장면은 조용했고,
이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 순간, 감정이란 건,
상황보다는
눈에 보이는 장면 하나에
반응할 수도 있음을 느꼈다.
사람이 꼭 큰일이 있어서 슬퍼지는 건 아니다.
하필 그런 풍경 앞에 있을 때
더 기쁘기도
때로는 천천히 무너지는 날이 있다.
감정은 말보다 먼저,
공기와 빛에 흔들린다.
그래서 요즘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땐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보다
내가 지금 이 장면에서
어떤 공기로 남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가끔은,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차갑고 서늘한 공기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어도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조용한 불편함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란 건 유리컵처럼
쉽게 균열이 간다.
누군가의 말 한 줄,
눈길 하나,
혹은 저녁빛 한 조각에도
툭, 무너진다.
그 무너짐을 아무도 보지 못하는 날엔
그저 따뜻한 풍경이라도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어도
그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다시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풍경이 된다.
스쳐가는 순간이지만,
어떤 장면은 오래 기억되고,
어떤 마음은 그 장면에 기대어 살아간다.
나는,
그런 풍경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풍경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