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터진 날에 배운 것
나는 골목대장이었다.
그 시절, 동네 집집마다 뛰어다니며
“나랑 놀자!” 하고 소리치면
아이들이 하나둘 공터로 나왔다.
놀이는 내가 정했고, 규칙도 내가 정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엔
달리기를 하면 늘 1등이었고,
어떤 운동이든 척척 해냈다.
웬만한 장난이나
남자 애들과의 기싸움에도 지지 않았다.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여자 아이들은 늘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시절, 치마를 들추는
장난꾸러기들이 나타나면,
울먹이던 여자 아이들은 내 쪽을 바라봤다.
나는 어김없이 나섰고,
귀엽고 통쾌하게 응징해 줬다.
화를 내고, 울컥하고, 나서는 일에 익숙했다.
그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걸 지키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 친한 친구의 정강이를 찼다.
그리고 그날 처음 알았다.
속상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으면,
언젠가는 이상한 모양으로 터진다는 걸.
그 터짐은, 종종 가장 소중한 사람을 향했다.
왜 싸웠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모든 에너지를 다해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서 들은 말일수록,
그 말은 더 깊숙이 박혀
오래도록 마음에 뒹군다는 걸.
아마 그날도 그랬을 거다.
마음 한구석에 쌓인 서운함이
말이 되지 못한 채 뭉쳐 있다가,
결국 이상한 모양으로 터져버린 건 아니었을까.
나는 그 친구를 참 많이 아꼈다.
그래서 친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마음이 콕, 찔렸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햇살 아래 반바지를 입고 있던 친구,
그리고 그 정강이를 향해
내 발이 뻗어간 순간뿐이다.
친구는 다리를 움켜쥐었고,
나는 그 친구를 향해 또 달려들었다.
우리는 동네 골목 모퉁이,
듬성듬성 꽃이 피어 있는 흙길 위에서
엎치듯 부딪쳤다.
친구는 나보다 한 뼘이 더 컸다.
하지만 내가 더 거칠게 화를 냈는지,
그 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울지도 못하고
그저 씩씩거렸다.
혼란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 대문을 들어선 마당 한쪽,
큰 감나무 아래에 주저앉았다.
그 아래에는 커다란 눈에,
나를 보고 콩콩 뛰며
두 발 인사를 하던 녀석,
하얀 강아지 흰둥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생명체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날 것 이상의
무언가를 털어놓는 순간,
감정도 함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진짜 너무 화가 나. 흰둥아.”
“걔는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을까?”
“나도 발로 차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 “
“내 마음도 몰라주고…“
말없이 앞에 있던 흰둥이는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비스듬히 들기도 하다가
그저 조용히 내 곁에 있었다.
그 고요한 시간 동안
나는 내 안에 고여 있던 말들을
조금씩, 흘려보냈다.
그리고 나니 조금은 가벼워졌고,
조금은 미안해졌다.
나는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좀 내가 너무했지?”
그러자 흰둥이는 벌떡 일어나
나를 똑바로 보며
크게, 한 번 짖었다.
나는 그 짖음을
‘그래, 맞아’라고 받아들였다.
친구네 집으로 곧장 향했다.
2분도 안 되는 걸음에 겁이 났다.
하지만 이상하게, 설레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용기를 낼 때 찾아오는 떨림이었다.
대문 너머 큰 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불렀고,
친구가 모습을 보였다.
서로를 보자마자
어색한 듯 몸을 꼬았고,
바로 울어버렸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를 안았다.
그리고 나는 울면서 말했다.
“ㅇㅇ야, 내가 미안해.”
그날 이후로 나는 알게 되었다.
감정이란 건 참고, 삼키고, 쌓는다고 해서
정리되는 게 아니라는 걸.
불편하고 속상한 마음일수록
조심스럽게, 정직하게 꺼내 보여야
비로소 가벼워진다는 것.
감정은 종종 말보다 먼저 달린다.
그보다 더 빠른 건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손을 내미는 마음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 마음은
흰둥이처럼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존재 앞에서
천천히 길러질 수 있다는 걸.
지금도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꿈틀거릴 때면,
나는 속으로 묻는다.
이건 지금 말해야 할까, 흰둥아?
그러면 마음속 흰둥이가
가만히 짖는다.
“조금 더 있다가 말해도 괜찮아.”
그럴 땐 그 짖음 하나에
마음이 정리되곤 한다.
그때의 흰둥이처럼,
당신 곁에도 말없이
함께해 준 공간이 있었나요?
[ 작은 메모 ]
그날 이후, 우리는 오히려 더 가까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는
다른 먼 지역으로 떠났다.
그렇게 멀어진 거리만큼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이어갔다.
엄마가 “ㅇㅇ한테 편지 왔어.” 하고 부르면
그 말 하나에 온 마음이 가득 채워졌다.
이따금,
친구는 그때 그 동네로
몇 번이나 나를 만나러 왔다.
함께 걷고, 웃고, 놀던 시간이
여전히 선명하다.
지금은 서로 연락하진 않지만,
30대의 우리가 마주한 지금.
그 시절의 그 친구는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를
따뜻하게 채우고 있다.
언젠가,
그때 그 감정을 떠올리며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소중한 건, 그 순간이, 감정이
이미 내 안에 오래도록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