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는 셰어하우스
"너 도대체 하루 종일 뭐해?"
퇴근 후 집에 돌아온 Y가 제 방으로 들어가기 전 묻는다. 배를 바닥에 두고 있던 나는 반쯤 몸을 일으킨다. 책과 공책, 펜이 바닥에 널부러져있지만 카페에 다녀왔다는 말부터 한다. 그리고나서야 책도 읽고 영화도 본다고 얘기한다. Y는 물어놓고 이미 제 방에 들어가고 안 보인다. 도저히 이곳에 살 수 없다며 짜증 섞인 혼잣말만 문 너머로 들릴 뿐이다. 보일러 버튼 위 화면에 "실내, 33도"가 선명하다.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남은 몸 반을 일으켜 냉동싱 문을 연다. Y 것인지 M 것인지 모를 두 손바닥만한 꽝꽝 언 아이스팩을 내 방으로 갖고 왔다.
"혼자 살면서 에어컨 없는 방은 처음이야."
아이스팩을 수건으로 감싸며 내가 말했다.
"저번에 옥탑방 살 때도 에어컨은 있었어."
수건을 싼 아이스팩을 끈적하고 뜨거운 다리 위에 갖다댄다. 여전히 숨이 턱 막힌다. 일어나자마자 에어컨 나오는 동네 카페를 전전했지만 그곳도 문 닫는 시간이 있었고 나는 다시 에어컨 없는 방 안으로 돌아왔다. 그냥 열대야가 아니라 좀 심한 열대야였다. 25도는 커녕 핸드폰 날씨 위젯 속 응암동 기온은 29도였다. 그보다 더한 33도가 이 집안이었다.
아이스팩으로 열을 식히면서 에어컨을 마련하는 상상을 했다. 상상에서는 이미 에어컨이 이 집안을 모두 아이슬란드로 만들었지만 어디까지나 과정이 생략된 결과일 뿐이었다. 에어컨을 마련하려면 일단 같이 사는 룸메이트들과 상의해야한다. 비용 부담은 어떻게 할 것이며, 어느 제품을 살 것인가, 1년 후 방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에어컨 호스를 연결하기 위해 벽이나 창문을 뚫어야 야 한다는 말은 또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과정만으로도 이미 여름이 다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아이스팩은 차가웠지만 금새 녹아내리고 있었다. 축축한 물방울들이 살갗을 더 끈적하게 만들고 있었다.
Y는 여전히 더위를 경멸스러워했고 나는 하고있던 상상을 접었다. 대신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에어컨 바람이 가득한 동네 카페에 들어가 2,0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그곳에 앉아 책을 읽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