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야망이 없다. 10대에도, 20대에도 그랬다. 청춘과 야망은 바늘과 실 같다 여겨서, 어떻게든 야망을 찾으려고 했으나 3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찾지 못했다.
야망을 대신한 건 사소한 일상과 말로 이어진 주변 사람들과 만남과 누군가의 글을 보는 재미였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지루한 삶이 견뎌졌고 미래가 조금은 기다려졌으며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가까운 친구들과 집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대체로 아주 가까운 과거와 현재에서 시작해 미래로 끝나는 얘기였고 내내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죽음'에 대해 힘껏 떠들었다. 얼마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화장터에서 일한 여성이 쓴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을 읽었기 때문이다.
But you don't have to burn
yourself that hard
Let me feel your heart
흙으로 흙으로 가는 짧은 이 길
더 이상의 흠은 없기를
─ 9와숫자들(9), 'Burn'
책 내용은 밴드 '9와숫자들'의 보컬 송재경이 쓴 'Burn'의 가사와도 맥이 닿았다. 가사의 '흙에서 흙으로 가는 짧은 이 길'은 단 두 시간의 화장으로 뼈밖에 남지 않은 인간을 납골함에 넣는 묘사와 빼닮았다. 한 인간이 사라진 자리는 정말이지 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얼얼한 충격을 얘기하자, 함께 있던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끔 깊은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부정적인 마음이 들면 죽음을 떠올리곤 한다. '죽겠다'가 아니라 '죽는다'를 떠올리면 어려운 지금이 조금은 쉬워지거나, 가벼운 지금이 무거워진다. 야망도 마찬가지이다. 야망이 있든 없든 산 자는 모두 죽기 마련이다.
그러니깐, 이제는 야망을 갖고 사는 삶 대신 사소한 일상을 사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살아서 보내는 사소한 하루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