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 한신·한진 아파트
그것은 산꼭대기에 있어 잘츠부르크 시내 어디에서든 보이는 '호엔 잘츠부르크성' 같았다. 삼선교, 한성대입구역 중앙 정류장에서 내려 삼선중학교 방향으로 올라서면 이 거대한 '서울표 호엔 잘츠부르크성'을 만나볼 수 있다.
돈암동 한신, 한진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 위에서 만난 뙤약볕은 몹시 뜨거웠고 그런 내 옆을 성북 1번 마을버스는 무심히 스쳐갔다. 이렇게 오래 걸을 줄 알았다면 버스를 탈 것 그랬다. 슬슬 찬물이 생각 날 때 쯤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다. 수십 개의 작은 창문이 규칙적으로 배치 된 거대한 벽이 우뚝 서있었고 파란색의 'P' 표지판을 보고서야 그 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 수 있었다. 바깥으로 나있는 창문을 위로 찬찬히 세고 나니 무려 6층짜리 주차장이다. 그런데도 이곳이 '1주차장'이란다. 경사진 길은 계속되고 건물 길을 따라 쭉 이어져 마침내 '2주차장'이라는 표시를 보여주고서야 끝이 난다. 주차장의 마중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아파트 탐색에 나선다.
도시 한복판 산꼭대기를 깎아 만든 곳 위에, 아직 불지 않은 풍선 모양의 이 아파트 단지의 배치는 지하철 출구 번호 규칙과 같은 일정함을 느낄 수 없다. 아마 평지와 언덕이 번갈아 나타나기 때문이리라. 그런 땅 위로 버터 상자 같은 창문이 수직, 수평으로 쭉 뻗어 복사-붙여넣기를 반복하고 있다. 괜히 그 안이 궁금했지만 들어갈 수 없다. 오스트리아의 병사가 ‘호엔 잘츠부르크성’ 지켰다면 이곳엔 경비원과 디지털 비밀번호가 있기 때문이다. 별 수 없이 외관의 베란다를 보고 면적과 안쪽 모습을 상상해본다. 실은 상상이랄 것도 없다. 인터넷에서 돈암동 한신, 한진 아파트를 검색해 미리 보고 온 12가지 평면도 모습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제 노력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지 않는 이상, 12가지 평면도는 4500여 세대를 일관성 있게 다룬다.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고 하는데 한신 한진 아파트에도 그런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옆면이다. 저 멀리서 봐야 ‘아파트 이름과 동수’가 보인다. 때론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외벽과 층수가 비슷한 단지 건물들을 구별 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라는 점이다. 단지 중앙에 있는 우촌초등학교를 제외한 모든 단지 내 건물이 609-1번지인 까닭에 이곳에선 ‘옆면에 써진 세 자리 수’가 번지수보다 중요하다. 이 세 자리 숫자가 없다면 402호로 주문한 치킨 한 마리는 402호라고 붙은 거의 모든 문을 열고나서야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단지 중심부를 걷다 유리와 간판으로 뒤덮인 거대한 건물과 눈이 마주친다. 아주 정직한 서체로 '스카이 프라자'라고 적혀있고 아파트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동산 점포가 즐비한 가운데 건물 겉을 살펴보니 걸리버가 버린 신발 한 짝 같다. 아니면 사다리꼴 공식이 자연스럽게 읊어지는 모양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건물 반대쪽으로 옮겨가니 전혀 다른 입면이 펼쳐진다. 80년대 초 완공된 강남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건물처럼 상당히 파격적이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상가 외부, 계단형식의 층 배치와 돌출된 계단, 회전문처럼 열리는 창문, 복도에 빼곡한 직사각형 간판 모음이 그 이유다. 이 중앙 상가를 중심으로 아파트 30동 사이를 외부 세계와 연결시키는 19개의 마을버스 정류장과 군데군데 위치한 학교는, 4500세대가 넘는 구성원들 사이의 질서를 유도한다. 서울 도심과 버스로 30분 정도이고 명문 사립 초와 거대 상업 시설이 각각 아파트 중앙에 있는, 81제곱미터(구 24평)부터 183제곱미터(구 58평)까지 다양한 면적을 고루 안고 복도식과 계단식을 모두 갖춘 이곳은 1995년부터 현재 2013년까지 19년의 세월을 받아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아파트가 들어서게 된 걸까? 아파트가 속한 동소문 지역 일대는 역세권인데다가 서울 도심과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이곳은 예부터 정릉, 성북동, 삼선교, 보문동, 동소문동 일대와 함께 조선시대부터 중인 계층의 삶터였다. 성 바로 바깥에 위치한 탓에 양반들에게 필요한 기술과 예능을 지닌 재인들이 주로 모여 살았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 전쟁이 터지면서 판잣집만 듬성듬성한 폐허로 남을 뻔 했다가 예술인, 상인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또 이곳은 전차 종점이기도 해서 서울 도심에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이랬던 곳을 70년대 초반 ‘재개발’ 하면서부터 특히 아파트가 속해있던 산동네 지역에서 여러 차례 마찰이 빚어졌다. 결국 20여년이 흐른 90년대 초에 들어서야 한신, 한진 아파트 개발 사업이 시작 될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서울 도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신흥 중산층에게 각광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가 들어서는 터가 산동네였던 터라 이 곳 원주민들과 근처 미아 일대 주거 취약 계층이 맞물리면서 작은 평수의 임대 아파트를 함께 내놓게 된다. 이 때문에 돈암동 한신, 한진 아파트의 주거 면적은 소형부터 대형까지 다양하다. 또한 산동네를 재개발 해 만든 건물인 만큼 실제 아파트 단지에서 보는 서울의 경관은 수려한 편이다. 아파트 10층이 다른 아파트 10층 보다 훨씬 높은 느낌이 드는 이유도 바로 산꼭대기라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아파트 뒷동산에 오르니 매끄럽고 평평한 바위가 눈에 띈다. 그 곳에 올라서니 저 멀리 대학로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병원’과 ‘창덕궁’, ‘남산타워’ ‘종로타워’가 있는 서울의 도심이 보인다. 바로 앞 아파트 최고층이 내가 서있는 산꼭대기만큼 높다랗다. 산꼭대기에서 아파트 꼭대기를, 그리고 도시에 심어진 수많은 건물 지붕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서울 속으로 내려 갈 채비를 한다. 아까 만난 뙤약볕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이 글은 2호 <매거진 파노라마 273>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