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빌딩
홍대 방향으로 가는 273번 버스가 종로2가 정류장에 멈춘다. 종로지만 어쩐지 종로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예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무래도 저 우뚝 솟은 종로타워 때문일까? 아니면 영어 학원 건물로 빨려 들어가는 수많은 젊은이들 때문일까? 보신각이 (심지어 완벽한 오리지널은 아닌) 콘크리트 건물 사이에 숨고 엄청난 수의 상점들이 에어컨 바람 속에서 여름 종로와 거리를 두는 사이, 나는 그 옛날 종로를 기억하고 있는 어떤 건물과 마주치게 된다.
하필 종로타워와 서울YMCA 건물 사이에 있어서, 마치 '미운오리새끼'같은 이 건물은 낮고 작고 낡았다. 게다가 건물의 민낯은 수많은 상점들의 간판 무더기로 제대로 볼 수조차 없다. 이곳이 바로 '장안빌딩'이다. 빌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지만,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이곳은 '근대기 종로'를 대표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장안빌딩이 이 모습 그대로 100년 넘게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니다. 현재의 장안빌딩은 일제강점기 이후 다시 지어진 것이고 그 전에 한성전기주식회사, 종로경찰서가 있던 곳이었다. 한성전기주식회사라고 하면 일제강점기 시절 한성(서울)의 전기를 책임지는 곳이었고 종로경찰서 역시 그 시절 치안을 담당하는 곳이었으나 실상은 일제에 맞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는 악랄한 기관이었다. 해방을 맞은 날엔 '조선 공산당'의 본거지가 되기도 하였으나 며칠 채 되지 않아 결국 모임이 와해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1901년에 만들어진 한성전기주식회사는 벽돌로 된 2층 건물로 특히 2층엔 시계탑을 설치해 근대화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곳은 1915년에 이르러 종로경찰서로 넘어가게 되고 외관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으나 그 속성은 완벽하게 달라졌다. 한창 종로경찰서가 악랄함의 절정을 보여주던 1923년 1월 12일 저녁 8시, 의열단 소속 김상옥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다. 이 때 근대화의 상징이라 불리는 시계탑이 소실된다. 그는 재빨리 친척이 사는 후암동(현 서울역 주변)으로 도망치지만 얼마 안가 발각된다. 눈 쌓인 남산을 헤집고 그가 새로이 도망쳐 간 곳은 지금의 하왕십리에 위치한 안정사라는 절이었고 (지금은 철거되었다)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아 들켜 결국 효제동(현 종로5가-혜화 사이)까지 도망친다. 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고 다수의 경찰들이 잠복해 있던 그 곳에서 김상옥은 경찰들과 권총을 겨누고 대치한 끝에 결국 마지막 남은 한발로 자결한다. 이런 사연은 현재 장안빌딩 앞 종각역 8번 출구 쪽에 '김상옥 의사 의거터'라는 표석으로 남아있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1936년에 이르러 옛 건물의 모습을 모두 버리고 '장안빌딩'을 세운다. 1945년 8월 15일엔 '조선 공산당'이 장안빌딩에서 모임을 갖고 조직 확대에 박차를 가하지만, 미숙한 준비로 결국 다음 달인 9월 초에 당이 해체 된다. 후에 '장안파 조선 공산당'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장안빌딩은 점점 근대사의 중심에서 멀어진다. 현재의 장안빌딩은 1936년에 지어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진 못하고 원래 2층이던 건물이 4층으로 증축되어 다양한 종류의 상점들을 품은 채 종로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장중한 사연을 안고 있는 장안빌딩이 가진 또 다른 의미는 바로 '위치'다. 종로타워 옆, 보신각 건너편, YMCA 옆, 피맛골 앞 등 동서남북이 온통 '핫 플레이스'다. 조금 더 걸으면 세종대로가 나오고 청계천이 보인다. 과연 종로의 시작점답다. 게다가 1호선 종각역 8번 출입구가 바로 앞이다. 버스정류장도 같이 붙어있다. 부동산 업자들이 울고 갈 역세권 중에서도 초역세권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장안빌딩을 자꾸 뒤로 밀리게 한다. ‘장안빌딩 앞 종각역 8번 출구’가 아니라 ‘종각역 8번 출구 앞에 있는 건물’이라던가 ‘종로타워 옆에 미스터피자 있는 건물 말고 그 옆 건물’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주연배우의 그림자에 가려진 비운의 조연배우의 모습이란 표현이 딱 알맞다. 어느 날 티비 뉴스를 보고 있는데 앵커 뒤로 높은 곳에서 촬영 된 종로 일대가 펼쳐져 있었다. 그 곳이 종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건 고층빌딩인 종로타워 때문이었고 그에 비해 3층짜리 단출한 장안빌딩은 그 풍경 어디에도 없었다. 물리적 위치로서 종로의 중심일 뿐, 지금 장안빌딩은 종로의 중심일 수 없는 중심이다.
맞은편에서 장안빌딩을 바라본다. 가운데와 맨 오른쪽 1층 부분이 붉다. 젊음이 가신 자리에 남은 건 주름살을 감추기 위해 분을 칠한 어느 늙은 노인의 하얀 얼굴이었다.
─이 글은 2호 <매거진 파노라마 273>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