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림잡아 헤아릴 수조차 없을만큼 많은 이들을 우리의 도시에서 마주치곤 한다. 쏟아지는 데이터와 행동 속, 인간 세상의 사연들은 공허할 정도로 광할한 우주 같아 도무지 나와는 관련없는 개념의 집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쳐가는 누군가의 존재들은 그저 이 세계관을 빽빽히 구성하는 익명의 사용자나 무명의 npc같이 여겨지기도 하며, 그럴때마다 우리는 더더욱 남에게 무심해지고 무지해지는 경향을 키워내게 된다. 무한한 서바이벌로 인식되는 사회이기에 "어차피 남인데?" 라고 생각하는 길이 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 사이에서도 우연히 지인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가끔씩 있곤 한다. 좁디좁은 세상이라며 서로가 얽혀 있는 관계들에 대하여 앞사람과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의외로 인간들 사이에는 겹겹의 조각들이 각각의 갈래에서 공유되고 연결되는 일이 무수한 편이다. 마치 퍼즐 같이 보기에는 오묘하게 비슷하면서 제각각의 자리를 굳건히 차지한다. 그러한 각자의 공통점들은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이 될 수도, 어떤 공간이나 집단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은 사람들이 뭉치고 더해지는 공동체로 이뤄졌으므로 어쩔수 없이 위같은 설정값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무심코 떨쳐내고 지워내는 얼굴들이라고 무시할 수가 없는 이유는 이때문이다. 언제 어떤 것들로 묶일지 모르는 우리의 캐릭터는 각자의 플레이에 어떠한 형태로든 조금씩 영향을 분명하게 기여하고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복잡하고도 교묘한 세계관에서 전지전능한 최고개발자가 아닌 이상, 서로가 가지는 비하인드와 관계도를 모조리 빠삭하게 파악할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공동체라는 무형의 룰과 틀에서 현상 너머로 드리워져있는 스토리에 대하여 상상력을 품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저 타인이라고 해서 상관없는 '남'으로 무작정 귀결되는 것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50명의 등장인물(실은 그보다 더되는)이 나오는 이 소설은 정말 게임같고 퍼즐같았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나타나는 새로운 인물의 사연은 저마다 작은 세계관을 속속들이 담고 있었다. 새 페이지에서 스멀스멀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들을 토대로 이전 챕터를 다시 훑는 과정은 흩어진 퍼즐 조각을 살펴보는 듯 했다. 우리의 인생살이가 그렇듯이, 등장인물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의 배경과 일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모 지역의 모 병원을 중심 테마로 둔 채 이뤄지는 수십가지의 삶들이 알록달록하게 이루는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밀한 재미를 지녔고, 그 안으로도 충만한 의의를 가졌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한 장소에서 한 사건을 겪는 마지막 장의 이야기가 그 특별한 묘미를 한 자리에 완성지음으로써, 소설은 퍼즐의 최종본을 맞춰낸다. 현생을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니 결국 그 엔딩은 세상이었고 우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