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혁H Aug 08. 2021

나그네

20.11.07.

성인이 된 후 나의 삶은 서울 일대를 방랑하는 ‘나그네’의 삶이나 다름없었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거주 공간은 물론이거니와 ‘일’과 ‘쉼’을 누리는 장소 역시 여러 동네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모양새였다.
학교와 가까운 동네에서 8개월 간의 기숙사 생활과 6개월 간의 셰어하우스 생활을 보냈었고, 학기와 학기 사이 방학 기간에는 친누나와 함께 신촌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이어갔다. 작년 여름 이후엔 은평구 한가운데 위치한 남도학숙에서 반년 정도 동안 지냈으며, 군대에 들어오기전까지는 목동의 고모댁과 홍은동의 자취방에서 잠시동안 머물렀기도 했다. 틈틈이 다녔던 아르바이트 일터들 역시 홍대입구, 광화문, 안암동, 마곡나루, 논현동에서 그때 그때 다양한 곳에서  경험했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어쩌다보니 1시간 안팎의 통학과 통근은 하루의 기본적인 코스가 되었으며, 드넓은 서울살이에 부쩍 익숙해진 뒤로는
한강 또는 남산 사이를 갈아타고 넘어가는 일이 딱히 어렵게 여겨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하이라이트는 주말과 여가 시간의 동선이었다. 지방에서 상경하여 늘 어딘가로 이동하며 타지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 동네와 장소를 찾아가고 돌아다니는 일을 그닥 꺼리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곧 휴식을 위한 시간에서도 발휘되곤 하였다. 개인적인 문화생활이나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서 하루에도 서울을 이리저리 쏘다니는 일이
점차 잦아졌고, 결국 이러한 방랑벽 생활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만의 취향이자 고유한 행동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심지어는 특별한 일정이 없더라도
방안에 가만히 콕 박혀 있는게 되게 답답하여 일부러
바깥으로 나가 길을 무작정 걷거나 인접한 동네
한 바퀴 도는 방식으로 빈 일과를 때운 적도 있었다.
이와 같은 라이프스타일 덕분에 나의 별명으로 자타공인하는 역마살이란 타이틀이 생겼을 정도였다. 지난 2년 동안 나의 행동의 화살표는 항상 바깥을
향해 있었으며 나의 정신의 무게추는 줄곧 움직임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이라는 유명 관광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하루하루의 평범한 일상을 마치 타지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특별하고 소중하게 채우고 느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문장이다. 나에게 있어서도 지난 모든 세월이 전부 다 여유롭고 편안한 여행과 같았다고 하면 분명 허풍일 것이다. 오히려 흥미롭고 가치있는 나날들보다, 학업과 작업에 험난하게 치이며
볼품없고 정신없는 매일이 더 자주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한 자리에서만 정주하고 안주하는
때가 삶을 잠식하지 않도록 일상을 보냈던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자유 그리고 다양성을 삶의 우선적인 가치로 여기고 있는 나에게, 서울 곳곳에서 지나가고 또 지내왔던 시간들은 크든 작든 여러가지 형태와 무늬로 추억의 장면을 채워줬고 경험의 두께를 키워냈다. 지금보면 후회스럽고 아쉬운 순간들 역시 존재하지만, 복잡하고 또 다채로운 이 도시에서 나름대로 여행 같은 일상을 살아온 것 자체에는 큰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편이다. 항상 움직이고 있던 나의 방향과 상태는 이 땅 위로 많은 이야기와 인생이 있음을, 저 하늘 밑으로 갖가지의 세계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일깨워줬다. 어느덧 주위가 권태로워질때마다 색다른 설렘으로 다시 활기와 빛깔을 더하게 했다.
낯설고 외로워 어쩌면 방황하고 있었을 떠돌이에게
더 나은 길과 더 넓은 길을 거닐어 보게끔 하였다.
누군가는 이해하기도 적응하기도 힘들지 모르지만
난 이 나그네 같은 생애를, 여행과 닮은 일상을
아끼고 애정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창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