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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혁H Aug 08. 2021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20.11.16.


이따금씩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원망이 드리울 때가 있다.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외면과 내부의 여러 부족함과 미흡함이 눈에 밟혀,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순간들이 매우 많아 왔다. 언제부터 심화되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지는 자격지심의 상태는 어른이 되어 군대에 들어온 지금까지도 나의 자존감을 딧밟듯이 괴롭히기도 한다. 타인의 잣대에 신경 쓰지 않고 본연 그대로의 모습에 당당하다는 것. 나에게는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늘 눈치를 보며 주위를 의식하고 나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서 걱정이 넘쳤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Love Yourself”라는 메시지가 왠지 허황되고 상투적인 글귀에 불과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한계와 고통을 이겨내어 마침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존중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저 먼 세상의 미담일 뿐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내 안의 못나고 모난 부분들이 여전히 넘쳐나며 고쳐지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그저 온화한 태도로써 그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보듬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그러한 구호와 문구들은, 위로나 힐링이라는 껍데기로 포장되어 허무하게 달콤한 말들만을 전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갈팡질팡 흔들리는 갈대같은 존재라 해도, 애초에 사람 마음이 그렇게 겉에서 잠깐 들려오는 몇 마디만으로 본질이 확연히 변화되는 단순한 게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어딘가 달랐다. 시중에서 흔하게 접하는 자칭 치유 에세이나 SNS 감성 글귀 등의 부류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 채워져 있었다. “날카로워도 자신의 상처와 대면할 수 있어야 한.”, “인격적으로 훌륭해도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두려움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용기 가 필요하다”, “상대방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가끔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제대로 보인다”, “사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마음 깊이 숨긴 채 살고 있다” 등등… 입에 발린 뻔한 위로가 아닌, 진지하고 그윽한 고찰에서 묻어나오는 진정성 있는 문장들이 쓰여 있었다.

작가는 여러 현장에서 인문학과 심리학에 대한 강의를 펼치고 저서를 지으면서, 스스로와 타인을 위해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작가의 사려 깊은 고찰에서 비롯되어, 사람들이 진정으로 내면의 고통을 이겨내고 자신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심리 테라피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읽으면서도 꺼내지 못했던 나의 속내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인상을 얻었고 무언가 든든한 버팀목에 몸을 편히 기대는 기분을 받았다. 평상시엔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통찰력 있는 내용들은 책에 대한 흥미와 집중을 더 높여주기도 하였다.

특히 심리학에 관한 언급과 견해가 더욱 한층 새롭게 다가왔었다. 심리학은 만능해결사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비춰보게끔 하는 하나의 프리즘이라는 것. 타인에 의지해 해결을 바라기보다 본인이 주도적으로 치유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페르소나(겉으로 보여져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는 인격)- 에고(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외면적 자아)- 셀프(무의식과 잠재력을 지닌 내면적 자기)-그림자(자신 속 어두운 심층을 차지하는 부분) 모두 자아의 일부라는 것. 평소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심리학의 개념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어 활자를 뛰어넘는 목소리로 나에게 울림을 건넸다.

페이지 하나하나가 뜻 깊은 메시지를 선사해줬지만, 가장 인상 깊게 머리 속에 꽂힌 부분이 있다. 바로 고통을 승화하는 과정에 관한 내용이다. 고통의 순간이 일상을 엄습할 때, 이를 직접 표출하기 보다 글-그림-음악 등 감각으로 전개되는 미디어로 표현해가는 과정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준다는 것이다. 작가 역시 글쓰기를 통해 마음 안의 상처를 끄집어낼 때마다 속으로 부끄럽고 아팠지만 동시에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고통을 재료로 삼아 잘 버무리고 예술의 형태로 그려냄으로써, 우리는 상처로부터 숨지 않고 되려 정면으로 맞서며 그조차 내 삶의 귀중한 일부로 포용하고 발달시킬 수 있게 된다.

여전히 나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은 어려움이 가득하다. 수년간을 이어온 길고 긴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책 한번 읽었다고 완연히 떨쳐냈다고 한다면 그거야 말로 자신을 뿌리부터 속이는 짓거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는 새로운 지향이 생겨난 것 만은 분명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의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같이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 나의 한계와 영역을 알기에 상대를 함부로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사람. 내면의 상처를 예술적인 가치로써 승화해낼 수 있는 사람. 더 다정하고 사려깊게 나와 사람들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 이러한 목표를 두면서 서서히 나를 가꿔나가고 돌본다면, 언젠가는 이 존재 그대로를 충분히 아낄 수 있고 안을 수 있는 떳떳한 자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예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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