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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혁H Aug 21. 2021

The most romantic scene ever

21.01.27.

 
2019년 10월 3일. 밀려드는 과제에 허덕이다 모처럼 공강을 즐기던 하루였죠. 그 전날밤 오랜만에 친구들과 화끈하게 술을 마시고 난 뒤라, 아침부터 머리가 숙취로 지끈지끈거렸어요. 어떻게든 몸을 리프레쉬하고 싶은 마음에 바람을 시원하게 쐬고자 한강으로 향했어요. 간단히 가방을 꾸리며 방을 나섰고, 강변을 따라 움직이는 버스에 몸을 실어서 여의도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선선함을 한가득 호흡처럼 품은 채 한강공원을 지나며 여유로이 거닐었어요. 그렇게 30~40분 정도가 지났을까요, 문득 새롭게 쉼터로 조성됐다던 노들섬이 궁금해졌어요. 얼마 전에 SNS 피드에서 우연히 그 곳의 소식을 접해서 일정이 프리해지면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해가 지기 전 한번 들렀다 가보고 싶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죠.
 
얼마 안 가서 도착한 노들섬은 아기자기한 규모였지만 절대 만만하거나 사소한 공간이 아니었어요. 한강대교 한가운데 강북도 강남도 아닌 평평한 섬. 영등포와 용산의 건물숲 틈으로 홀로 서있는 위치에서 자연과 도시가 한데 어우러지고 있었어요. 익히 알던 서울의 이미지와는 꽤나 다른 생경한 모습에 조금 이국적인 느낌까지 들 정도였어요. 본격적으로 섬 내부에 들어서 경관을 자세히 쳐다봤어요. 그날따라 유독 맑은 하늘 밑 날씨도 아주 선선했고 구름 사이 비춰지는 햇빛은 그야말로 따사로웠어요. 평화의 기운을 드러내는 초록 나무와 잎파리, 살포시 넘실대는 한강의 물결, 들려오는 웃음과 바람의 간질거리는 소리, 가까이 보이는 동네와 도로의 일상까지. 각각의 음과 빛깔과 움직임의 하모니가 어색함 없이 조화롭기 그지없었죠. 가만히 벤치에 누워서 사방을 보는것만으로도 그저 황홀하고도 자유로웠어요. 서울에서 이같이 오감으로 흡족한 편안함은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화룡점정은 노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일몰이 다가오면서 노들섬의 풍경은 노을과 일체가 된 듯 변해갔어요. 푸른빛, 황금빛, 주황빛, 연보라빛, 붉은빛, 핑크핓, 짙은쪽빛. 오묘하고도 고혹적인 색채는 변화무쌍하게 시공간을 실시간으로 감쌌어요. 한강의 자연과 서울의 도시는 그 장면 속에서 그윽히 더해지며 절경에 또 다른 감각을 채워갔어요. 저는 그저, 몇가지 감탄사 이외에 아무 단어도 뱉지 못한 채 그 시시각각을 빤히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어요. 사진으로도 수십장을 찍어대면서 그 순간을 그 자리에서 만끽하고자 했어요. 주위에 들리는 거라고는 물살의 잔잔함과 바람의 포근함 뿐이었지만, 어디선가 시티팝과 어쿠스틱의 음악 선율이 마치 선명히 시각화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한낮의 마무리부터 초저녁의 시작까지, 하늘이 빚어내는 거대한 전시회를 관람한 뒤 정신을 차려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있더라구요.
 
여전히 다른데서 그때와 비슷한 풍경을 찾아내지는 못했어요. 너무나도 굉장하고 아드막히 완벽해서, 다시금 그 저녁을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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