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이 있는 정원

고흐의 탈을 쓰다

by 채코

나에게 사랑이란 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릴 적 완벽을 추구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기억이다. 늘 아버지 눈치를 보며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았는데 그의 시선에서 점점 벗어나는 행동으로 그와 멀어지게 된다.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했지만 그와 가까이에서 사랑으로 마음을 주고받기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여자친구에게 매달렸으며 그도 아니라면 누군가가 나를 보듬고 보살펴야 하는 처지를 갈구하게 된다. 안 그러면 너무 불안하여 온전히 숨 쉬며 살아가기가 고통스럽다. 그러나 최근에 세가토리가 떠나간 후 빨리 체념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사랑이라는 이름을 떨쳐버리기로 한다. 저 멀리 하늘로 풀숲 사이로 날려 버린다. 숲속의 나무, 줄기, 잎, 밤송이 껍질을 관찰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따스한 정원에 캔버스를 펼치고 자리를 잡는다. 그 동안 관찰했던 것들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점묘화를 그릴때에는 한 방향으로 점을 찍지 않는다. 여러 다른 방향으로 점을 찍어놓으니 입체적인 그림으로 변하며 더욱 생동감이 느껴진다. 여기에 큰 붓을 사용하지 않고 작은 붓으로 여러번 터치를 더한다. 캔버스가 마르기 전에 덧칠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는 중이다.


내가 바라던, 가지려고 애를 썼던,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갈구했던, 나의 연인 세가토리에게 집착했던, 기억들이 드라마틱 하게 흘러간다. 그것들이 점점 희미해져 가니 다른 것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밤나무 아래를 걷고 있는 연인, 양산을 쓰고 벤치에 앉아 있는 연인, 내가 꿈꾸던 그곳에 그들을 꽉 채우고 있으니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기분이다. 서로를 바라보고 밝은 얼굴로 이야기하며 걷는 연인은 내가 꿈꾸던 이상향이다. 남들이 쉽다고 하는 일상의 일들이 나에게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모든 것을 그림으로 대신하려 한다. 어차피 인생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림 그리는 것이 수월하게 느껴진다. 남들은 오랜 시간에 걸린다는 그림이 더욱 빠르게 그려지는 것은 다른 상념에 빠지기 전에 온전히 예술에 혼을 실어 몰입하는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삐딱한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없다.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진정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은 일을 해내고,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으며, 사랑으로 이루어진 일은 언제나 훌륭하게 이루어진다. _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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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고흐의 그림들을 보며 예술이 가난이라는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어떤 작업이 있으면 되는가를 고민한다. 만약 내가 아마추어 예술가가 그려놓은 그림을 이야기로 꾸며서 그들의 그림의 느낌을 자세히 설명하며 유명해지도록 도와주는 것을 하면 어떠한지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 누군가의 그림이 살아움직인다면 너무 좋을듯하다. K인문학에 기여하는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900%EF%BC%BFsc.jpeg?type=w580 생피에르광장에서 두 연인이 양산을 쓰고 산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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