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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해 Mar 17. 2021

있잖아 말이야


누군가 걱정거리나 힘든 일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해결책을 찾아주기 바쁘다. 상대방이 그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림책 *<가만히 들어주었어>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역시나 기다리고 들어주는 것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속상한 아이에게 누군가는 어찌 된 일인지 말해보라고 한다. 누군가는 화날 땐 소리를 질러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해결해준다고 한다. 그냥 다 잊고 웃는 것도, 치워버리는 것도, 복수를 하는 것도…. 그 무엇도 아이는 하고 싶지 않다. 그때 토끼가 아이에게 다가와 가만히 곁을 지켜준다.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고, 아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준다. 어찌 보면 그저 들어주는 것밖에는 해준 게 없는데, 아이는 다시 일어날 용기가 생긴다.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에서도 토끼와 같은 이가 존재한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후 힘들어하던 오브아저씨와 서머의 곁에서 조용히 힘이 되어주는 클리터스가 그러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조언 없이 그저 곁을 지켜주고 가만히 들어주던 클리터스는 누구보다 두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준다. 서머는 말한다. 이제야 제대로 된 장례식을 하는 것 같다고.  


동안 친구들 여럿이 모인 단톡방에서 한 친구의 푸념이 지속되었다. 시어머니 이야기, 남편이야기는 주로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머지 친구들은 다독다독 그녀에게 한 마디씩 건넸다.

"이렇게 해보면 어때?"

"네가 참 힘들겠다. 다음엔 안된다고 얘기해 봐."

그녀는 매일 같이 시어머니와 남편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친구들은 지쳐갔다. 그리고 하나, 둘 그녀의 뒷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걔는 왜 자기는 바뀔 생각이 없으면서 그렇게 산대니."

"사실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닌 것 같던데, 걔가···"

난 왠만한 뒷담화엔 잘 끼지 않는다. 친구들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냥 불편하다. 단톡방에서 그녀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녀에겐 그저 들어줄 상대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 해결책을 내미는 친구가 아닌, 그냥 들어주는 친구가 필요했을 뿐.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해결해야 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고, 보기 좋게 만들어야 마음이 편하다. 누군가가 아파하고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내가 편한 방식으로 상대에게 다가간다. 그 사람을 위해서 일까. 나를 위해서 일까. 사이가 가까울 수록 공감과 경청은 책 속에만 존재한다. 사랑과 우정이라는 탈을 쓰고 조언과 충고는 보기좋게 '공감'이 되기도 한다.

무슨 일이든 적절한 답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저 그것을 깨달을 수 있게, 이미 알고 있다면 용기 낼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 토끼와 클리터스처럼 곁에서 함께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     


내 곁에 토끼와 같은 이가 누구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 조용히 곁을 지켜주어야 할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





물음표 or 마침표          


‘그랬구나’라는 공감 한마디의 힘.

내 생각은 잠시 접고

“그랬구나”

한 마디를 건네 보세요.  

   

“요즘 회사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

? 무슨 일 있어? 일이 너무 많아?”

“그랬구나, 힘들었구나.”     


“나 공부하기 싫어! 너무 힘들어.”

세상엔 그것보다 힘든 일이 많아.

공부가 제일 쉬워.”

“그랬구나. 요즘 우리 ○○가 공부하기 힘들구나.”          


쉬운 듯 어려운 한 마디, 그랬구나     







*가만히 들어주었어 | 글/그림 코리 도어펠드 | 옮김 신혜은 | 북뱅크

** 그리운 메이 아줌마 |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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