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걸 좋아한다. 생각할 거리가 많을 때,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마음이 답답하고 몸이 찌뿌둥할 때, 산책만 한 게 없지 싶다. 걷다 보면 무거웠던 발걸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발뿐이겠는가, 마음도 머릿속도 가벼워진다. 그리고 잠시 멈춤과 동시에 더 커다란 선물을 마주한다. 걸음 따라 움직이던 모든 것들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눈을 감고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고, 바람에 머리칼이 하나하나 날리는 것을 느끼고, 꽃이 나를 향해 웃는 모습도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한 해를 무언가를 가득 채우기만 하며 보냈다. 달력 가득한 일정에 신이 나면서도 꾸역꾸역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좋은 음식을 먹은 것 같았다. 소화가 잘되지 않았다. 어떤 맛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좋은 것, 좋지 않은 것,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은 것 구분하지 않고 마구 담기만 했던 내 머릿속은, 내 일상들은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답답한 미로 같았다. 덩달아 체력도 쌓일 틈이 없이 고갈 상태였다. 새해를 맞이하며 첫 달을 ‘쉼’의 달로 정했다. 엉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푸는 시간이 필요했다. 외출 일정도 최소화, 해야 할 일도 최소화하며 먹고, 자고, 뒹구는 한 달을 보냈다. 설거지며, 청소며, 아이들과의 일정도 잠시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뒹굴다 보면, 멍하니 있다 보면 엉킨 실 하나가 보인다. 어느 구멍으로 빼내야 하는지 말이다. 지쳤던 몸의 근육들이 하나씩 살아난다. 몸 따라 마음에도 살랑 봄바람이 불어온다.
무엇이든 잠시 멈추었을 때 더 깊이,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신나고 재미있는 일, 내가 바라던 일을 하면서도 가끔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잠시 멈추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걷다가 잠시 쉬며 햇살과 바람이 주는 선물을 마주하듯, 지금 나의 기분 좋은 떨림과 주변의 감사한 일들이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