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실존주의 시리즈
첫 번째 직장에서 나와 지금 직장을 다닌 지 한 3-4년 차 정도였던 것 같다. 어릴 때 부터 방랑벽이 있던 나는 슬슬 좀이 쑤셔 어디 다른데 없나 기웃거리던 참이었다. 당시 하고 있었던 업무가 개발도상국에 디지털 교실을 지원해 주는 프로젝트였다. 한창 출장을 많이 다닐 때는 1년에 1/4을 해외에서 보낸 해도 있는데 어디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선진국이 아니라 내 돈을 내고는 쉽게 갈 수 없는 나라들이 주요 출장국이었다. 예를 들면 방글라데시, 르완다, 과테말라, 세르비아,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등등. (심지어 세르비아는 4번이나 갔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나열하면 끝도 없는데 생각해 보면, 늘 뭔가가 터졌다…
스리랑카에서 돌아오는 바로 다음 날 쿠데타가 ‘터져’ 공항이 봉쇄되거나, 과테말라에서 출발한 날 비행기 이륙 직후 간발의 차이로 화산이 ‘터지기도’ 했고. 방글라데시에서는 항구에 도착한 선박이 무슨 이유에선지 하역이 끝도 밑도 없이 지연되서 내 분통이 ‘터져버린’ 일도 있었다. 결국 시위용 하이바 하나 옆구리에 끼고 항구 화물 사무실로 날아가 물건 빼줄때까지 여기서 한발짝도 못움직다고 엄포를 부린 적도 있다. 다행히 방글라데시 명예 한국대사님의 도움을 받아 (난 이때 해외 한국대사관에 현지인 출신의 명예대사직이 있는 지 처음 알았다. 얼마나 든든하던지.) 예정일에 맞춰 교실 구축을 잘 마치긴 했지만 까닥하면 스케쥴이 계속 밀려 어렵게 잡은 방글라 교육부 장관님, 주방글라 한국대사님 등 고위직 분들의 참석이 취소될 뻔했었다. 더 아찔했던건 불과 하루 차이로 방학 전 행사가 열려 학생들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학생들 없이 텅빈 강당에서 열리는 교실 개소식 행사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튼. 어느 날 중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저녁을 먹다가 서로의 근황을 나누던 중이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사실 친구들 술자리 그렇듯 딱히 차례란 건 없다) “나 국제협력 업무가 너무 재밌는데, 출장이 너무 많고. 이런저런게 너무 많이 터져 나중엔 뭐가 터질지 이젠 나도 모르겠어. 이럴거면 아예 국제기구에 가서 일을 한 번 해보면 어떨까”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중에 열심히 안주를 먹고 있던 한 친구가 무심코 한 마디를 던졌다.
“너란 놈은 안주를 모르는구나”
맞다. 내가 원체 입이 짧아 깨작깨작 먹고, 술을 마실때도 안주를 잘 안먹는 편이긴 하다. 그런데 당연히 친구의 말은 내가 그만큼 돌아다녔고, 이것저것 해봤으면 이제 그 정도면 그만 정착하란 조언이었고, 어떻게 너 하고싶은거 다하면서 살 수 있냐 이제 그만 철 좀 들라는 타박이었다.
살다 보면 누군가 내게 했던 말 한마디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떤 말은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처럼 그 상처가 오래 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말들은 나를 끌고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당시 친구의 저 말이 내게 그랬다. 왜냐하면 안주를 모른다는 말이 내겐 포기를 모르고 늘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진취적인 인간상을 상징하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에. 그래서 친구의 본심과 다르게 난 이걸 격려와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래? 난 안주를 모르는 놈이었군. 어디 한 번 국제기구로 진출해 봐야겠어.’
물론 난 아직도 이 글을 한국에서 쓰고 있다. 일하고 싶었던 국제기구는 출장을 통해서만 가보는걸로 만족했다.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건 훨씬 어려웠다. 대학교 졸업 후 인턴 경력이 매우 중요했고, 분명한 전문성이 있었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다시 해외생활을 하고 싶으면 도장 찍을 각오를 해라라는 아내의 협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아, 이 사람이 아직도 해외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못 버렸구나 정도의 측은지심이었지만 두번째는 혹시나 해외 이주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우려와 걱정으로 바뀌더니 세번째 이후부터는 그럴거면 혼자 가라는 협박으로 발전했다. 나와 아내는 둘다 영국에서 유학을 했는데 (난 스코틀랜드, 아내는 웨일스) 그 땐 서로 알지 못했지만, 아내는 어릴적 부모님과 떨어져서 지냈던 유학생활이 무척이나 외롭고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따라서 이제 다시는 한반도 밖으로 벗어나서 사는 일을 없을 거란다.
여느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드라마를 즐겨본다. 특히 역사, 좀비, 스릴러 같은 장르 드라마를 좋아한다. <스위트 홈>이란 드라마는 자기가 가진 욕망이 괴물로 변하는 세상을 다룬 아포칼립스 유형의 장르물인데, 등장하는 욕망의 종류가 참 다양하다. 괴물로 변하기 전에 관음증이 있었던 변태는 죽어서도 남들을 훔쳐보는 눈깔괴물이 되고, 엄청난 근육을 키우고 싶어했던 이는 ‘프로틴, 프로틴!’을 끊임없이 외치는 엄청난 파괴력의 근육괴물이 된다. 그 외에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아이돌 지망생은 끊임없이 뭔가를 먹어치우는 식탐괴물이 되고, 자신의 아이를 잃은 욕망이 반영된 태아괴물도 있다. 사실 각각의 사연을 들여다 보면 슬프다. 욕망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욕구’를 가지고 있음으로, 그것이 사회적으로 ‘요구’될 때 충족되지 않은 나머지가 ‘욕망’이 된다는, 즉 라캉의 저 유명한 “욕망=욕구-요구”이 공식이 성립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온갖 종류의 다양한 괴물들의 향연을 보다가 갑자기 아내가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괴물로 변한다면 우린 뭘로 변할까?”
어? 그러게.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욕망이 뭐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도저히 내 욕망을 내가 모르겠어서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금새 답이 돌아왔다.
“바벨탑”
“응? 바벨탑? 성경에 나오는 그 바벨탑?”
“응”
“왜? 아, 내가 언어 욕심이 많아서 그렇구나. 맞아 영어도 계속 해야 되고 일본어 끝나면 다른것도 배워볼려고.” (*참고로 신은 바벨탑으로 자기의 권위에 도전한 인간들을 벌하기위해 이전까지 하나의 언어였던 언어를 서로 다른 언어로 쪼개 이들의 소통을 단절시켰다.)
“아니”
“그럼 뭔데”
“성취욕. 결혼하고 나서부터 가만히 있는걸 못봤어. 항상 뭘 배울려고 하잖아. 그리고 더 높이 있다고 생각하는 뭐가 될려고 하고. 분명해. 괴물로 변하면 자기는 분명 바벨탑이 될거야.”
처음 든 생각은 아 바벨탑은 드라마에서 캐스팅되기 어렵겠구나, 였다. 아무래도 키가 엄청나게 큰 괴물이 될테니 드라마 메인 배경인 건물안에는 못들어가겠다 싶어서. 아니 그런데 실존주의와 의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글을 시작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딴 길로 새버렸는가.
‘바벨탑이 되고자 했던 안주를 모르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