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립운동가를 두번 죽이며,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중에서)
선생의 오래된 전언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어떤 사건에 덧대어 보았다.
현실(건국훈장)을 현실 아닌 것(동상철거)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독립투쟁)을 사실 아닌 것(동족학살)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 있었던 일은 더 이상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그 말의 충격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바다에서, 역사에서 비슷한 무게의 비겁함이 느껴지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이는,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이들에게 버림받았다.
또 외롭게 죽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무엇 때문에 비겁함을 택한 것일까?
나로서는 현실의 아찔한 소용돌이 속에서
바다속 빙산처럼 숨어있는 비겁함의 거대한 크기를 도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 알겠다.
저들은 과거와의 절연(絶緣)을 통해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역사의 사실을 너무나 손쉽게 사실 아닌 것으로 절멸(絶滅)시키려 한다는 것을.
황현산 선생은 2018년 돌아가셨다. 선생의 전언을 아로새기지 못했다.
2023년 8월의 끝자락을 비겁함으로 흘려 보내는 것이 부끄럽다.
우리는 비겁함의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