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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o Jun 30. 2023

태어난 김에 사는데요?

2. 실존주의 시리즈 

“인생의 책이 뭐예요?”라는 질문으로 주변에 애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면, 애꿎은 나를 꾸준히 괴롭혀왔던 질문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였다. 이른바 인생 질문 시리즈다. 생각해 보면 난 꽤 어렸을 적부터 이 질문에 매달려왔던 것 같다. 내가 목적론적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내가 그냥 태어나서 살고 있는 건 아닌 거 같고(만약 그렇다면 너무 허망할 것만 같았다.) 어떤 거대한 목적이 있고 아직 그걸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잠깐 가족사를 이야기하자면 난 가족 중에 목사, 목사 사모,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들로 넘쳐나는 매우 강력한(?) 개신교 어벤져스 집에서 자라왔다. 친가 쪽으로는 내가 6대손이며 외가 쪽으로 치면 무려 7대손이다.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조금 풀이하자면 19세기 조선에서 운요호 사건,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등 교과서에서만 들어봤던 사건들이 벌어지던 그때 서양에서 선교사가 처음 들어왔고(천주교가 조선에 들어온 게 17세기니까, 개신교는 좀 늦긴 했다), 개신교로 개종한 소수의 조선인 중 하나가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쯤 된다는 이야기다. 여담으로 외가 쪽 선조 한 분께서는(몇 대 위의 어른이신지는 모른다) 조선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를 통해서 개신교로 개종을 하셨고 가지고 계셨던 땅을 교회 설립을 위해 기증하셨는데 그 땅이 지금 만남의 광장 근처 어딘가에 있다고 한다…     


뜬금없이 가족사를 이야기한 이유는 바로 (개신교 집안의) 인생의 목적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으므로 인생의 목적은 전혀, 혹은 감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일러두기 위해서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인생의 목적은 단 하나, 바로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음. 하나님의 영광이라. 주일 예배 이후 성경 공부 시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처음 생각은 '오 이제 모든 인생의 비밀이 풀렸구나!'가 아니라 ‘앗, 정답을 너무 쉽게 알아버렸네’였다. 왠지 모르게 인생의 목적 같은 거창한 질문은 오랜 시간 동안 처절히 고민하고 씨름해 가며 마침내 깨달아야 하는 부류의 질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마치 영화 쇼생크의 탈출 포스터처럼 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내 인생의 (그리고 모든 다른 인간들의) 목적이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라니, 뭔가 억울한 기분이었다. ‘내’ 인생의 목적이 다른 ‘누구’를(그게 설령 신일지라도) 위해서 종속되어 있다는 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고로 난 여전히 저 정답이 정말 정답인지 알아내기 위해 씨름 중이고, 내가 이런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크게 노하실 어벤져스 들이 한둘이 아니다. 네가 감히!!)    

       

어느 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다른 부서 누구누구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더라’, ‘새로 나온 예능 프로그램이 나왔는데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등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오랫동안 관사 생활을 해서인지) 빨리 집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나, (워낙 재미가 없는 인간인지라) 딱히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난 조용히 커피를 홀짝거리며, 간간이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난 갑자기 더 이상 대화의 무임승차자가 될 수 없고 뭔가 의미 있는 기여를 해야 하겠단 생각이라도 들었던지(그러니까 갑자기 왜?) 옆에 있던 J에게,      


“J, J는 인생의 목적이 뭐예요?”     


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아파트 청약과 예능을 논하다가 느닷없이 인생의 목적이라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J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주변까지 다 들렸던 모양이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에 순간 정적이 흐르며 다들 속으로 ‘뭐야 이 꼰대 같은 질문은, 마치 중학교 도덕 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군’이라고 생각하는 게 훤히 보였다. 노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하모니의 합창보다 동시에 시작되는 침묵이 더 대단한 법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J의 기다렸다는 듯한 대답 덕분에 ‘오 역시, 인생은 J처럼 살아야 돼’, ‘맞아요 인생 뭐 별거 있나요?’ 식의 맞장구들이 여기저기서 연달아 나오면서 분위기 브레이커의 낙인을 피할 수 있었다. 그때 J의 대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인생이요전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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