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존주의 시리즈
“인생의 책이 뭐예요?”
한때 이 짧은 질문으로 사람들을 괴롭혔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의 책 한권만 읽으면 인생이 바뀌거나 성공할 것만 같았던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몸담고 있던 직장의 선배들이 이 질문의 가장 큰 피해자였는데, 그들이라면 나보다 나이도 많고, 공부도 더 많이 했을 것이고(직장의 성격 탓에 대부분 석/박사 학위가 있었다.) 당연히 더 많은 책도 읽었을 것이란 근거 없는 짐작에서였다.
어느 날 같은 부서에 있던 A선배에게 이 질문을 던졌고, 선배는 난생처음 이런 질문을 들어본다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한 손을 턱에 괴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박경리의 토지라고 대답했다. 당시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나 A선배의 인생의 책이 조정래의 태백산맥인지, 박경리의 토지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대답을 듣고 검색을 하고 나선 10권(태백산맥) 혹은 20권(토지)의 압도적인 분량에 그만 압도되어 읽기도 전에 포기해 버린 기억은 분명히 난다. 게다가 전라도 사투리(태백산맥)였는지 경상도 사투리(토지)였는지도 헷갈리지만 둘다 나에게 해독이 몹시 어려운 언어였음도 분명하다.
그다음 나보다 늦게 직장에 오긴 했지만 두어 살 위였던 B형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형, 인생의 책이 뭐에요?” 이번엔 대답이 금방 돌아왔다. “안나 카레리나”. 안나 카레리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확실히 들어본적은 있다. 얼른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니 1,500여 쪽이 넘었다. 왜 인생의 책은 두꺼워야만 하는가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그래도 ‘험준한 산맥’과 ‘광활한 토지’에 비하면 3권 짜리는 ‘야트막한 언덕’쯤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는데 바로 ~스키, ~비치, ~코이 등으로 끝나는 길고 긴 러시아 이름들이었다. 가뜩이나 발음 따라하기도 어려운데 한 명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허다하고, 무엇보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다시 포기. 그러다가 세월이 또다시 지나 지금 직장에 와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안나 카레리나’를 도전했는데, 무려 1,500여 페이지를 무모하게도 한 권으로 합쳐버린 책으로였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이 책을 읽다가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분명 다른 의미에서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법한 책이었다.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인생의 책은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이전 직장에서 5년을 마무리하고 나올 때 C선배가 작별선물이라면서 책을 한권 건넸다. (심지어 새 책도 아니고 자기가 읽던 책이었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란 책이었는데 일단 한눈에 봐도 내가 생각한 인생의 책은 아니었다. 몇 번의 설문조사 끝에 (토지, 태백산맥, 안나 카레리나 말고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를 인생의 책으로 꼽은 사람도 있었다.) 인생의 책은 일단 두꺼워야 한다는 선입견이 생겨버렸는데 이 책은 얇았다. 게다가 구관이 명관이라고 웬지 오래될수록 인생의 책이라 부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 책은 당시 기준으로 출판된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은 신간이었다. 게다가 광고 기획자가 쓴 에세이라니. 지금에 와서야 내 무지와 시건방짐에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아무튼 당시에는 절대 내 인생의 책이 될 수 없었다. 시큰등하게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그곳을 떠나왔고, 그 책을 다시 집어든 것은 우연히 어느날 마땅히 읽을 책이 없어서 였다.
차례대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책을 읽어가는데, 아니 웬걸, 게슴츠레 떠있던 나의 눈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건방지게 꼬고 있던 다리도 저절로 펴진 것 같다.) 뭐지 이건? 강연 형식으로 구성된 책에서 소개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저자가 여러 번 밑줄을 쳐가며 읽은 책이었는데, 소개된 작품들을 너무나도 읽고 싶게끔 만드는 엄청난 매력이 숨겨져 있었다. ( ) 특히 5강에 이르러서 난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다. ‘햇살의 철학, 지중해의 문학’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5강은 거의 김화영과 알베르 카뮈에 대한 찬사에 가까운 장이었다. 난생 처음 들어본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쉽게 매료될 수 있다니.
들뜬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선 난 곧바로 김화영 선생의 “행복은 충격이다”란 책을 사서 서둘러 읽었다. 김화영 선생은 알베르 카뮈를 연구한 카뮈 전공자인데, 이 책은 선생이 젊은 시절 엑상 프로방스로 유학을 떠나 지냈던 젊은 날의 회상록인 셈이었다. 이 책은 내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유의 세계를 맛보게 해주었고 제목처럼 어마어마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리고 나서 난 김화영 선생과, 젊은 선생을 매료시켰던 카뮈의 세계관을 뒷받침하고 있던 것이 ‘실존주의’란 사상이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존주의가 도대체 뭐길래 이토록 사람 감정을 설레게 하는가.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난 몰랐다.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이나 진지하게 실존주의 바다에 빠져 살게 될 것이라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