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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모 Mar 27. 2021

퇴사합니다.

시험관 임신의 여정

  '손이 예쁜 사람은 잘 산다는데, 지예는 손이 예뻐서 참 잘 살겠다.'

퇴사하겠다고 찾아간 나에게 사장님께서 해주신 말씀.


  내 손은 어릴 때부터 서른다섯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오동통해서 아기 손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콤플렉스까진 아니어도 내 손이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동생이나 남편은 어쩜 손에 뼈가 안 보일 수 있냐고 왕왕 놀리기까지 한다.

  그런데 유독 마흔 넘기신 어른들이 내 손을 보면 '고생 한 번 안 하게 생긴 예쁜 손'이라고 하신다.


  나 손이 예뻐서 평생 잘 살까? 고생 한 번 안 하면서 그렇게?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까?'라는 걱정이 앞서 선뜻 내리기 어려웠던 퇴사 결정.

사회적 지위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상상해본 적이 없는 나는 천상 직장인이었다.

어디에서나 예쁨 받았고, 고과 평가에서는 만점을 받아본 적도 있으며, '다음 팀장 자리가 생기면 너를 올릴 거라고' 감사하게 말씀해주시는 임원 분도 계셨다.


  종종 해외 출장을 나가고, 때가 되면 성과급이며 상여금이 나오고, 어쩌다 잘 써진 영문 메일에 뿌듯해하고, 매출이나 광고 결과가 잘 나온 달에는 두둥실 기분이 좋아지고, 매일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 나의 직장.


  일태기며, 월요병 모르는 내가 결코 아니다.

나는 이미 2번의 이직을 경험했고, 그때마다 전 직장에서 탈출한다는 일념 하나로 이력서와 레주메를 수정했다. 지옥의 불야근을 거의 4년이나 했었다. 청첩장을 밤 12시에 회사에서 만들었다면 믿을는지.


 지금 회사에서도 친구들과 다음에는 '육아휴직'으로 도망치자 라는 얘기를 종종 했었다. 육아휴직은 결코 탈출구가 될 수 없음을 모두가 알았지만, 왜인지 그렇게 말했다. 쳇바퀴 돌아가 듯 흘러가는 직장인의 삶도 고단 했겠지.


  우리 세 명 중에서는 내가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오래 임신 준비를 해왔다. 시험관을 진행하는 모든 과정에서 마음을 써준 친구들이었다. 나는 너희도 늦지 않게 준비하라며 임신을 권유하던 편이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보자면 그 둘은 올여름이면 둘 다 아기 엄마가 되어 계획한 대로 육아 휴직을 쓰고, 나는 임신을 하고자 퇴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아, 인생이란!


  출발이 빨랐다고 결승선에 먼저 다다를 순 없다는 진리. 머리를 탁 치며 또 하나 배운다.




  '내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평생 백화점 다니고, 쇼핑하며 우아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남편은 이렇게 말하면서 나의 퇴사를 강권하였다.


  그렇지만 이 감사한 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는 한 달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 회사는 코로나로 인해 주 4일 근무, 10 to 4의 최강의 근무 조건을 자랑했다. (오전 10시 출근 - 오후 4시 퇴근) 연봉 삭감은 없었고, 코로나로 고객이 끊겼기 때문에 당연히 큰 행사나 이벤트도 없었다. 게다가 내가 5년 넘게 한 일이라, 이제 업무에는 더 이상 어려울 것도 없었다.


-


  정말 퇴사를 결정한 것은 어쩌면 '나이' 때문이었다.

서른다섯에 임신 시도를 해서 서른여섯에 아이를 낳는다는 계획이 이루어질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마저도 너무 '늦다'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사장님께서는 '너 정말 나이도 어리면서 왜 그러니'라고 하셨지만, 서른다섯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결코 어린 나이일 순 없을 텐데. 물론 아직도 결혼 안 한 친구들도 있고, 결혼했으나 아이 계획이 없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데 남편과 나는 연애 때부터 다자녀를 꿈꿔 오던 커플이었다. 서로가 다복한 가정에서 자랐기에 최소 3명을 얘기하였었다. 그때는 자녀도 계획대로 생기는 줄 알았다.


  계획대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러면 당연히 아이를 낳는 건 줄 알았다.

임신을 하기 위해 병원을 다닌 지는 3년 남짓, 시험관을 진행한지는 1년 남짓인데, 임신의 문턱에서 4번의 유산을 겪고 나니 '몸이 건강하지 않은가?'라는 무서운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관련 검사를 수십 가지 하여도 발견하지 못한 어떠한 문제가 있는 건지.



  그래서 퇴사 이후 나의 삶의 포커스는 '건강해지기'이다.

  1:1 필라테스를 등록하고, 줌바 클래스도 등록하고, 의무적으로 양재천을 걷는다.

  이로써 나는 건강해질까?




  '나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사실 수정되어야 할 부분 일지도 모르겠다.

내 '손'이 나에겐 예쁘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참 예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아직 한창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


  '꽃보다 배'라는 여행 프로그램에서 할아버지들에게 인생을 돌아본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다. 모든 할아버지들이 모두 입을 모아 '30대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다.


  20대는 열정은 많았으나, 여유와 멋이 없었다고.

  30대는 돈, 여유와 멋이 있어 인생이 즐거웠다고.


  나는 찬란한 30대 중반의 여성이다.

  사회적 지위는 잃었고, 팽팽 잘 돌아가는 이 일머리를 더 이상은 쓸 수 없지만,

  저 멀리서 다가오는 아기를 향해서 내가 뛰어가기 위해서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나.


-


  돌아보니 내 회사 생활이 너무 즐거웠던 것처럼 (사실은 안 좋은 부분이 상당했을 터)

  나중에 돌아보면 찬란한 3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테지.


  오늘 나의 하루를 충만하게,

  온전히 행복하게,

  작은 것에 감사하고 겸손하게,

  그렇게 살아가야지.


 어떤 꽃은 검은 포장지에서 유독 빛이 난다.

 하얀 포장지에 싸여있으면 그저 그랬을 색감이, 검은 포장지와 대비되어 매력이 한층 더해진다.


 나의 삶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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