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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Oct 17. 2020

아이가 아프고 힘들 때 엄마의 역할

둘째는 태어날 때 작은 편이었다. 다행히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리원에서도 잘 못 먹고 하루 종일 잠만 자던 아기였다. 지금은 수십 가지 음식과 풀, 동물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다. 그래서 그런지 둘째는 아프면 유독 잘못될까 두려웠다.


아이가 6개월이 좀 안됐을 무렵, 저녁에 갑자기 열이 심하게 났다.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안아 올리는데 아이가 토를 했다. 한 번이 아니고 두 번, 세 번, 네 번.... 토를 하는데 갑자기 눈동자에 힘이 풀리는 게 보였다. 갑자기 예전에 막내 동생이 경기를 하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고열이 있던 동생은 음료수를 먹자마자 계속 토를 했다. 그리고 눈동자가 풀리며 갑자기 뒤로 누웠다. 입에는 거품이...


문득 그때 생각이 나서 무서워졌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안고 흐느꼈다. "우리 둘째 어떡하지. 우리 둘째 잘못되면 어떡하지. 나 너무 무서워. 그러지 마. 아프지 마. 엄마 무서워. 으어어 엉..."


그러자 갑자기 옆에 있던 남편이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부여잡으면서 벌컥 화를 냈다. "정신 차려! 아기가 아플수록 부모가 정신을 차려야지. 애 놀란 거 안 보여? 진정해. 뭐 할지부터 생각해."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나와 남편은 아이의 토사물을 치우고, 아이를 물수건으로 닦이고, 기저귀를 갈았다. 혹시 몰라 병원에 갈 짐도 챙겨두었다. 좀 시간을 두고 해열제를 먹였더니 더 이상 토를 하지는 않았다. 지친 아기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


내가 좋아하는 책 중에 김경림의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라는 책이 있다. 제목처럼 뻔뻔한 엄마가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영재 판정을 받은 아홉 살 아들이 생존율 5% 희귀 암에 걸린 후 현명하고 따뜻한 엄마로 열심히 살아간다. 그 책에 보면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p64)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민수 엄마, 잘 들어요. 엄마가 여기서 울고 있으면 안 돼요. 간호사도 있고, 의사도 있지만, 엄마가 옆에서 지켜보지 않으면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몰라요. 이렇게 우는 거, 아이한테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우리가 아이들을 죽이고 살릴 수 없어요. 내가 잘못했다고 아이가 병든 것도 아니고 내가 잘한다고 아이가 낫지도 않아요. 그거, 그냥 하늘의 뜻이에요. 가서 아이 옆에 있으세요. 그냥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세요."
 p83) 그러나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무엇보다 감정을 관리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아이 앞에서 불안해하지 말 것. 아이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 것. 아이 앞에서 슬퍼하지 말 것.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은 아이 모르게 할 것. 엄마의 괴로움은 절대 아이 모르게 따로 해결할 것. 긍정적인 감정은 얼마든지 표현하고 나누어도 괜찮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아이에게 숨길수록 좋다는 것을 늘 명심할 것.                                                    


아이들이 아프면 전전긍긍하던 전과 달리 좀 태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양상이 보이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해열제를 먹어도 듣질 않고, 2주째 아픈데 병원에서 원인을 도통 모르겠다고 하고, 아이가 다니는 기관에서 다쳤다고 연락이 오면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나면서 머리가 쭈삣선다. 가슴이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해댄다.


그때 아이들을 떠올리거나 바라본다. 말은 하지 않지만 아이들 눈에 불안함이 보인다. 나는 감정을 꾹 누르고 이야기한다. "괜찮아". 사실 괜찮지 않지만 나 만큼은 괜찮아야 한다고, 괜찮은 거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괜찮아졌다.


앞으로 아이들에게 더 괜찮지 않은 상황들이 생길 수 있다. 아이들은 울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나만큼은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존재가 되고 싶다. 세찬 바람이 불어도 뿌리와 밑동이 굵고 탄탄한 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옆에 있어주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의 두려움과 불안함이 덜어질 수 있다면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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