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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Oct 20. 2020

먼저 연락할 때 생기는 일

"넌 절대 먼저 연락 안 하더라."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섭섭하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그 친구와 알고 지낸 지 6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알았다. 자주 연락하던 친구였고, 한 번도 그 친구의 연락을 무시한 적이 없었기에 섭섭함을 느끼고 있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무심함 때문이 아니라 나의 소심함 때문이었다. 나에게 있어 연락은 능동적이 아니라 수동적이었다. 남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나에게 먼저 연락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에게 있어 연락이란 용건이 있어야 하되, 너무 내 용건만 말해서도 안 됐다. 


별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안부 연락을 한다고 가정해보자.(참고로 좋은 반응은 나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상대방은 별 반응이 없을 수도 있고, '아, 왜 연락한 거야?', '귀찮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니 연락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내 요구 사항만 들이밀면 '필요할 때만 연락하네' 하면서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그러니 먼저 연락하지 말고 상대가 필요로 할 때 연락을 받아주면 된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그런 상황을 내세우며 나름 변명을 해 보았지만 친구는 나보고 이기적이라고 했다. 뭐? 이기적이라니! 나는 배려를 한 건데.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나를 보더니 친구가 덧붙였다. '야, 나도 먼저 연락하는 게 항상 쉬운 것만은 아니야.'


아... 순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전까지 그 친구가 먼저 연락하는 게 편해서, 좋아서 그런 줄만 알았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 나에게 친구야말로 배려를 하고 있던 거였다. 덕분에 다른 친구들과 달리 그 친구와는 오래 연락을 하며 지낼 수 있었던 건데.


뭔가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먼저 연락을 건네기 시작했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반응들은 다양했다.  '뭐야, 네가 먼저 웬일이야?' 흠칫 놀라는 사람, '어머! 먼저 연락해 줘서 너무 고마워^^' 하고 반가워하는 사람, '응! 안 그래도 말이야 연락하려고 했는데' 하면서 바로 태연하게 말을 이어가는 사람... 내가 생각했던 시나리오가 전개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얼마 전에는 바빠서 한동안 뜸했던 동료에게 연락을 했다. '바쁠 텐데, 괜히 연락해서 민폐인 건 아닌가' 싶었지만 머리와는 다르게 내 손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요즘 바쁘다고 들었는데... 고생이겠다. 힘내!!'


별생각 없이 한 마디 건넸을 뿐인데, 그 친구는 많이 힘들었나 보다. 아무도 본인의 힘듦을 몰라주고 끙끙거리던 중, 그냥 그 힘내라는 나의 한 마디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안타깝기도 하고, 나 또한 그동안 모르고 있었음에 미안하기도 했다. 바쁜 일 끝나면 꼭 만나서 맛있는 거 먹자고 약속을 하면서, 먼저 연락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연락의 순서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누군가가 연락을 하고 그 연락을 잘 받아준다는 것, 연락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 오랜만에 연락을 해도 자연스럽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손을 잡으려면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렇기에 먼저 연락하는 사람은 연결고리의 핵심이 되는 게 아닐까.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먼저 연락하는 게 서툴긴 하다. 그래도 나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요즘엔 코로나로 만나기가 어려우니 연락이 그냥 연락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안부를 묻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다가 대화는 흐지부지 마무리되곤 한다. 그래도 덕분에 서로가 나름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인연의 고리를 다시 한번 묶어주었으니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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