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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Nov 16. 2020

나에게서 엄마를 본다

요즘 부쩍 아이들에게 자주 화를 낸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나와도 점점 말이 통한다. 그런데 내 말을 알아들으면서도 왜 행동은 정반대로 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눈에 보이니까 더 얄밉고 속이 터진다.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그만하랬지. 얼른 안 치워? 엄마 말 안 들을래?’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과 말투가 어쩐지 익숙하다. 아, 내가 어릴 때 우리 엄마 모습이다.


엄마는 건강이 안 좋았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다고 했다. 결혼하고 아빠는 항상 새벽에 출근하고 늦은 밤에 돌아오셨다. 엄마는 홀로 집안 살림을 꾸리고, 아이들 셋을 돌봤다. 큰 딸이자 큰 며느리로 양가 대소사도 나서서 챙겼다. 막상 본인의 몸을 돌볼 시간은 없었다. 엄마는 자주 아파서 끙끙거렸고, 아픔을 참느라 미간의 주름이 잡혀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통증을 체감할 수 없었던 나는 종종 엄마의 짜증이 버겁게 느껴졌다.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반복하게 될 때면, 엄마의 말에는 날이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말을 내뱉을, 특히 반복할 기운은 더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릴 적 내 일기장을 보면 엄마가 아픈 상황에 대한 걱정, 엄마에 대한 미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갈구하는 내 마음이 적혀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됐다. 대신 머리가 좀 컸다고 엄마와 소리 내서 다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국민학교) 때의 나의 일기들
.


엄마랑 다툴 때면 ‘나는 엄마처럼 화내지 않을 거야!’, ‘너 똑 닮은 딸 한 번 낳고 살아봐’ 식의 레퍼토리가 반복됐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나는 나와 닮은 딸을 낳지는 않았다. 대신 나와 닮은 아들을 낳긴 했지만.


*


나는 엄마가 나를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정반대였다. 내가 너무 엄마를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엄마가 나에게 보여줬던 짜증보다, 내가 무심코 했던 말과 행동이 엄마에게 큰 상처가 되었음을 알게 됐다.


사실 엄마에 대한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들이 훨씬 더 많다. 엄마의 부엌은 항상 바빴다. 매 끼니와 도시락 반찬은 겹치는 법이 없었다. 밥이라 하면 김이 모락모락, 갓 지은 밥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무엇보다 엄마는 내 모든 고민의 청취자였다. 내 일기장은 자주 비어있어도 엄마의 귀는 쉴 틈이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서는 그런 엄마의 좋은 모습은 거의 없고, 닮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면모들만 자꾸 보인다. 분명 엄마보다 아프고 힘들지도 않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게다가 기가 막히게도 나를 닮은 아이, 첫째는 그런 나의 행동만 쏙쏙 골라 따라 한다. 나에게서 엄마를 보고, 아이에게서 또 나를 본다.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화장대 구석에 놓여 있는 뿌연 손거울이 보였다. 입김을 후후 불어가며 거울을 닦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에 내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내 얼굴은 분명 어릴 땐 아빠를 닮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엄마를 닮아간다. 문득 내 마음도 거울처럼 닦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보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도, 숨겨져 있는 내 좋은 모습도 좀 비춰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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