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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Dec 09. 2020

전화위복이 될 테니까

예전엔 힘든 일이 생기면 너무나도 괴로웠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겉으로는 쿨한 척해도 속으로는 불이 활활 끓고 나중엔 잿더미가 잔뜩 쌓여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곤 했다. 지금도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그나마 전보다는 부담이 덜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최근에도 안 좋은 상황과 결과가 겹쳐서 다가오니 억울한 마음이 확 몰려왔다. '아니, 아무리 객관적으로 봐도 이건 아니지 않나? 어떻게 나한테만 이런 상황이 올 수 있어?' 그러다가 생각은 번져서 자책으로 이어진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었나? 다 내가 문제였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그나마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다. 후~우. 마음에 공기들이 소용돌이가 치기 전에 바깥공기를 만나게 해 준다. 아까보다 흥분의 정도가 다소 가라앉는다. 그리고 떠올린다. 인생사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라고 했지.  


전화위복(轉禍爲福) :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 (출처 : 네이버 한자사전)


개인적으로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좋아하기보다는 믿는다고 해야 하나. 자주 그랬다. 특히 최악이라고 생각한 일들이 나중엔 나에게 기회였고, 행운이었다. 꼭 일어나야만 하는 일들도 나에게 맞는 때가 있기에 삶은 나의 의도와 다르게 완급조절을 한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나를 정말 무지막지하게 괴롭히던 아이가 있었다. 신체적 폭력이 아닌 정신적으로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겉으로는 세상 나와 친한 친구인 것처럼 굴었는데 뒤에서는 내 물건을 빼앗고, 친구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자신의 엄마에게 거짓으로 나를 포장시켰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는 엄마들 모임에서 내가 안 했던 일들을 고해바쳤다. 


당시에 나는 너무 어렸고 순진했다. 그냥 그 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 친구가 나를 괴롭힐수록 그 친구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나도, 주변의 친구들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친구를 끊어냈고, 다른 친구들과 어른들도 더 이상 그 아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 친구가 나를 괴롭히던 시간은 무려 4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내가 그 친구와 관계를 끊을 무렵, 우리 엄마도 그 아이 엄마와의 관계를 끊어냈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속상해한다. '왜 네가 그렇게까지 힘들다는 걸 몰랐을까. 그 아이와 떨어뜨려 놓을 생각을 안 했을까. 왜 나 또한 그 아이 엄마에게 맞춰주고 미안해하며 속을 끓였을까. 할 수만 있다면 그 시간을 다 되돌리고 싶어 ….'


전화위복이라고 하기에 물질적으로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그 일 때문에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하기엔 다소 비약적이려나. 그렇지만 그 사건 이후로 유독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사람을 보는 안목을 길렀다. 게다가 그 일을 통해 나를 괴롭히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낼 용기와, 그 친구를 반면교사 삼아 누구를 심히 괴롭히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얻었다. 아직도 이 마음은 내 중심축에 자리하고 있다.



어쨌든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젠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어쩌면 이 일이 행운의 첫 단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 일이 내 마음의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생각해본다. 괴롭고 힘들고 부당한 일 또한 나의 삶을 넉넉하고 풍요롭게 해 줄 밑거름이자 자양분이라고 믿으면서. "힘내자, 다 전화위복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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