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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Jan 05. 2021

사람을 판단하는 안경을 쓰고 있다

회사에서 장착한 아이템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같은 부서 내의 사람들이 정말 다 좋았다. 동기들이 각자 부서에서 힘든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도 나는 항상 입을 다물었다. 정말 비난할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동기들이 '아, 뭐야~!' 하고 야유를 보내도 '정말 우리 부서 분들은 다 좋아서 그래'로 일관했다. 나는 정말 인복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직속 사수인 대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서 분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차장님도 좋으시고... 아, 모 과장님은 너무 똑똑하시고 성격도 좋으신 것 같아요. 단점이 없으세요.' 그랬더니 대리님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하셨다. "그래? 그분은 좀 호불호가 있어. 회사에서 좀 더 일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


그 당시에는 대리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 과장님을 포함하여 첫 부서의 분들은 평균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모든 면에서 좋은 분들은 아니었다. 만약 그분들을 입사 초기에 만나지 않고 지금쯤 만났더라면 상당히 다른 평을 했을 거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다 좋았다. 생각해 보니 당시의 나는 업무도 잘 몰랐고 사람 보는 눈도 없었다. 상사들의 업무가 다 대단해 보였고, 나에게 건네는 한마디가 조언 또는 칭찬으로만 들렸다.


그렇게 순진했던 나는 몇 년간 업무를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믿는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아가면서 판단 능력을 길렀다. 이제는 잘 모르는 업무여도 조금 듣고 '아, 대충 이런 내용이네' 때려 맞추고, 잠깐의 이야기를 통해 그 사람의 업무 능력과 성격을 가늠한다. 판단은 주관적이지만 나름의 보이지 않는 기준은 있다. 그렇게 나만의 기준 안경을 끼고 사람을 판단해 간다. 좋은 사람, 못된 사람, 일 잘하는 사람, 안 하는 사람….


현재에 서서 과거의 나를 보면 약간 바보 같지만, 사실 그 시절의 내가 그립다. 당시의 나는 순수하게 사람의 장점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 만났던 분들 중 남들에게 힘든 사람, 까칠한 사람, 무서운 사람이 나에겐 똑똑한 사람, 원칙적인 사람, 무심한 듯 잘 챙겨주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주변 사람들이 '그분 좀 그렇지 않아?'라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게 '난 좋았어!'라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참 신기한 것은 그분들에게도 내가 좋게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그분들 속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래도 나에게 '같이 일할래?' 물어봐 주시는 분들이 있고, 다른 이들을 통해 '그분이 너는 칭찬하시더라' 이야기를 듣곤 하니 어쨌든 나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따금씩 그분들을 마주할 때면 잠시 고민에 빠진다. 지금의 나는 (특히 회사에서) 너무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있지는 않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내 태도에 따라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속의 판단 안경을 벗을까 말까 만지작거린다. 그런데 안경은 이미 쓴 이상 벗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지금 이 시기가 딱 과도기일지도. 전처럼 안경을 안 쓸 수는 없어도, 다른 안경을 쓸 수도 있으니까. 상대방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좀 더 유연하고 너그러운 판단 기준을 가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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