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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Feb 10. 2021

신입 직원이 들어왔다

선배로서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부서에 신입 직원이 들어왔다. 정말 오랜만에. 그리고 어쩌다 보니 내가 멘토가 되었다. 그동안 많은 직원들이 입사했지만 내가 직속 멘토가 된 적은 없었다. 오랜 기간 같은 팀에 신입 직원이 없어서, 신입 직원이 왔을 때에는 다른 선후배들이 멘토를 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잘 피해 다녔다. 뭐, 일반 선배 역할과 뭐가 다르겠어, 싶었는데 부서장님은 업무 배정, 지도 편달 등을 전적으로 위임하셨다.


여하튼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했더니 친한 동료들이 그랬다. 야, 네가 진정으로 좋은 선배라면….


"빨리 이직하라고 해줘야지."


서로 뭐야, 하고 웃었지만 솔직히 말하건대 이미 돌려 돌려 말하긴 했다. '왜 여기 왔어? 더 좋은데 많은데. 아직 젊잖아.' 그런데 그 직원 왈, 이미 다른 부서의 동기 중에는 대놓고 조언을 받은 동기도 있다고 했다. 참나, 본인들은 힘들게, 열심히 다니고 있으면서 그렇게 누군가를 구원해 주려고 하다니. 그러면서 커피 사주고 챙겨주고 하면서 애들을 홀리고 말이야. 그러니까 신입 직원들이 농담인 줄 알잖아.(?!)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입 직원은 당분간 나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사실 입사했다는 사실만으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나름 조언을 해 주었는데도 남아있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면 업무도 익숙해지고 마음도 단단해질 수 있게 도와줘야지. 반짝반짝한 그 직원의 모습을 보며 문득 나도 신입 때 저랬던가 하며 십여 년 전을 떠올렸다. 아, 나도 참 주책이네 싶었는데 주변에서 '흠흠, 내가 입사했을 땐 말이지...' 하면서 라떼의 향연이 지속되는 걸 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


사실 입사하고 교육받는 시기가 가장 신날 때인데, 코로나로 인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했다. 예전 같으면 실습교육, 숙박교육이 있어야 할 시간에 비대면 온라인 교육이 진행되었다고 했다. 급한 대로 우리 회사의 인트라넷 사용법을 간단히 알려주고 업무 자료집을 한 권 건넸다. 


1. 많은 자료를 읽어보았으면


다음 날 자료집을 바탕으로 업무 설명을 해 주었다. 한 시간 동안 후루룩 설명하는데 이해가 됐으려나 싶다. 옆에 쌓아두었던 두꺼운 책 몇 권을 신입 직원 앞에 밀어주었다. "자, 네가 봐야 할 책이야." 그러자 그 직원 얼굴에 당혹감이 비친다.


처음 회사에 입사하면 뭔가 바로 업무를 부여받기를 원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랬었으니까. 나의 사수는 신입직원이었던 나에게 30개의 엑셀 파일과 책 3권을 주며 말했다. '한 달 동안 살펴봐봐.' 나는 뭘 중점적으로 봐야 할지도 모른 채 처음부터 끝까지 그 파일들과 책을 뒤적이며 공부했다. 그 시간은 꽤 지루했고 뭔가 바쁘게 일하는 동기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훗날 큰 도움이 됐다. 나중에 업무에 치이게 되니 그런 자료들을 차근차근 살펴보고 읽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의 읽었던 규정들과 자료들은 업무의 시행착오를 줄여 주었다.


실무를 바탕으로 배우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론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실무를 하면서 더 효과적으로 배우고 익힐 수 있다.


2. 어디든 배울 것 하나쯤은 있다


때로는 본인의 전공, 희망업무와 달리 업무가 배정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 부분은 조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부분이 너무 불합리하거나 버겁다고 생각되면 얼른 회사를 옮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회사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어떻게 들어온 곳인데 나가라고 하시나요!'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면, 최소 1년은 주어진 업무를 해보기를 권한다.


개인적으로 모든 업무에는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업무가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 또한 관심이 없는 업무를 맡았는데, 이 업무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나중에 다른 업무에 크게 도움이 된 적이 있다. 내 동기의 경우에는 처음엔 전혀 관련이 없는 업무를 줬다고 화를 내더니, 그 업무 경력을 잘 살려서 이직을 하기도 했다. (아, 이건 좋은 예가 아닌가^^;)


더 나아가 자신의 업무에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부분은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주면 그걸 느끼고 다른 사람보다 그 사람에게 신경이 쓰일 것이다.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신의 업무를 좋아하고 살뜰히 챙긴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더 업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3.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사람'


이 부분은 신입 직원에게는 잘 안 와 닿는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이 말만큼은 절실히 깨닫고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새로운 신입 직원에게 나는 좋은 선배일 수도, 별로인 선배일 수도, 나쁜 선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좋은 선배라는 가정하에 말을 했다.


"만약 네가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도와줄게."


본인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잘 처신한다고 해서 사람 때문에 힘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때로는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가 나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나와 안 맞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오해로 인해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상황을 겪었다. 처음엔 혼자 끙끙거리면서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엔 사람 때문에 힘든 시간을 사람 덕분에 이겨냈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중 몇몇은 나중에 고마운 사람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래서 덧붙여서 이야기한다. "가급적이면 너무 미운 사람도 적으로는 만들지 마."


*


이런저런 말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나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 주었던 선배들을 떠올렸다. 왠지 지금의 내 자리가 어색해진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어도 되나? 나야말로 당장이라도 그분들 앞에 달려가서 지금의 내 고민을 늘어놓고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다.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하고 조심스레 묻는 그 직원 앞에서 나 또한 지금 속으로는 이 업무는 너무 버거우려나, 이 업무는 너무 지루하려나 하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그 직원 앞에서 다른 건 몰라도 마음이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선배가 되어주고 싶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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