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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떡 Mar 30. 2021

실패를 연습한다

최근 A4 한 장의 수필을 응모했다가 떨어졌다. 당선자 명단에 동명이인이 있어서 순간 놀랐지만.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당 잡지에만 세 차례 응모를 했고, 번번이 낙방을 했다. 글솜씨도 문제거니와 해당 잡지를 잘 파악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종종 온라인 공간에 독후감, 아이디어 모집글이 보이면 응모를 해 본다. 추첨을 통해 선물을 준다는 설문조사도 해 보고, 회사에서 하는 추첨 이벤트에도 응모한다. 거의 당첨된 적이 없다. 게다가 갈수록 당첨률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이렇게 응모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확실하지 않은 것은 잘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떨어진다는 것이, 실패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되었을 때의 기쁨보다, 안 되었을 때의 불쾌감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예 도전 자체를 거부했다. 피할 수 없는 시험이나 평가의 경우에는 정말 마음속에서 울면서 쳤다. 그러니 처음 직장인이 되고 가장 좋았던 것은 월급보다도 '시험을 안 봐도 된다'라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언젠가부터 이것저것 도전을 해 본다. 운전을 하고, (공부를 안 한 상태에서) 시험도 치고, 글 응모도 해보고, 새로운 모임에 참여도 하고, 손을 들어 발표를 해 보고, 소수만 뽑는다는 곳에 지원도 해 본다.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사서 고생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부담감에 덜덜 떨기도 한다. 무엇보다 수차례 이어지는 '탈락', '불합격' 소식이 씁쓸하기도 하다.


이런 도전을 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 이유는 '억울함'이다.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실패가 두렵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했던 것 같다. 배워보고 싶었던 분야, 하고 싶었던 일들도 잘 못할까 봐 겁부터 먹고 해보지 못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몰려왔다.


두 번째 이유는 '아이'다. 첫째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가 한 획만 잘못 그려도 새 도화지를 꺼낸다. 조금만 선을 덧대어 그리면 될 것 같아서 제안을 해 보았더니, 조금이라도 망친 그림은 싫단다. 또한 뭔가 새로운 음식, 새로운 활동을 제안하면 거절한다. '한 번 해봐. 재밌을 거야.' / '싫어. 못하면 어떡해.' 그런 첫째의 모습은 안쓰러움과 동시에 익숙하다. 나도, 아이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새로운 기쁨을 놓치고 살았다.


이제라도 억울함을 털어내보면 어떨까. 아이한테 잘하는 엄마의 모습보다, '봤지? 엄마도 잘 못해.'하며 웃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에 새로운 도전들을 시작했다. 해보지 않았던 일들이라 어렵고, 어색하고, 자꾸만 어긋난다. 성공률 90%를 자랑하던 나였건만, 실패율 90%를 기록하고 있다.


처음엔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과정이었는데, 이제는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이 되었다. 마치 실패를 연습하고 있는 것 같다. 연습을 통해 실패를 두려워하던 내가, 실패에 익숙해지고 단련되면 좋겠다. 물론 아직은 연습량도, 연습 시간도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전에는 한 번의 실패로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면, 이제는 유사한 일로 하루 정도 슬퍼하니 나름 발전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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