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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오 Jan 30. 2017

6th_12월 초의 바이칼 호수는 비수기

알혼섬 후지르마을 니키타, 북부 투어

이른 새벽,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나를 이르쿠츠크라는 동네에 내려주었다.

비교적 포근한 영하 12도

역 앞에서 트램을 타고 중앙 시장으로 향했다.

왜? 알혼섬 가려고!

성수기 때는 알혼섬 내 숙소뿐만이 아니고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버스도 예매를 하는 것이 좋다는데, 내가 묵을 숙소인 니키타 홈스테드에서 버스를 예약하면 이것들이 중계료를 떼어먹어서 나는 그냥 갔다. 


'설마 나 한 명 탈 자리 없겠어?'


라고 생각을 하고 갔지만 막상 도착해서 쫄긴 했다.


어쨌든 꽉 차지 않은 승합차 버스를 타고 알혼섬을 향해 출발하였다.

중간 휴게소에서 동네 개님과 한 컷

2시간 정도 달리고 한 번 쉰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밥을 먹으면 된다.

화장실은 여름에 오면 어지간한 여자들은 사용 못할 것 같았다. 밑이 보이는 화장실이다.

겨울에 오길 잘했다.

알혼섬 행 배의 선착장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또다시 2시간여를 달리면 알혼섬에 다다른다. 안 그래도 해가 짧은 겨울인데 이동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갔다. 알혼섬은 적어도 2박 정도는 해야 조금이나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이번 여행에서 알혼섬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래서 숙소도 대충 알아보고 제일 유명한 니키타 홈스테드로 잡았다. 조금 더 부지런했으면 더 저렴한 숙소도 가능했겠지만, 위치나 시설이나 식사나 다 만족한다. 다만, 거주지 등록하라고 돈 낸 것은 조금 아깝다. 뭐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니키타 홈스테드 옆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부루한의 바위가 나온다. 꽤 영험한 바위라지? 나는 박 모 대통령 누님처럼 샤머니즘에 관심이 없어서 큰 감동은 없었지만 저 바위가 그래도 나름 동북아 샤머니즘에서 중요하다고 하더이다. 나에겐 그냥 일몰이 아름다웠던 엄청나게 추운 곳.


나름 주말에 알혼섬 후지르 마을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숙소에 투숙객이 거의 없었다. 체크인할 때 북부 투어를 문의했는데 사람이 없어서 투어가 없다고 했다. 이 추운 날씨에 걸어서 관광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저녁 식사를 먹을 때 숙소 스탭이 다른 숙소에 관광객이 조금 있어서 내일 투어가 가능하다는 희소식을 전해왔다. 그렇게 나의 잊지 못할 알혼섬 북부 투어가 시작되었다.

중식 포함 6시간짜리 북부투어, 금액은 900루블(약 18,000원)

니키타에서 출발한 투어차량은 후지르 마을 내 숙박업체들을 돌며 투어객들을 픽업한다. 어제 같이 버스를 타고 들어온 동양 여자 1명과 러시아 아주머니 1명, 그리고 독일 여학생 2명과 프랑스 남학생 1명이 이번 투어의 참가자들이었다.


"Hello?"
"Hello~ Where are you from?"
"I'm from Korea, and you?"
"와우 반갑습니다. 독일 사람이에요."

한글이 재미있어서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독일 태생의 이르쿠츠크대학교 유학생 안나마리, 간단한 한국어 인사만 가능한 그녀의 독일 친구 니콜라, 말수가 적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프랑스 남학생 알렉스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이후에 처음으로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을 만났는데 독일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투어 기사 겸 가이드 아저씨가 러시아어만 해서 답답했는데 안나마리가 조금씩 통역해줘서 어찌나 고마웠던지. 내가 아끼는 군용 핫팩을 선물로 주었다. 액체로 된 핫팩만 써본 적 있다는 안나마리에게 24시간도 버티는 지옥불의 핫팩을 선물로 주었더니 신기해하면서 고마워했다.


투어는 위의 6개의 코스를 돌면서 사진 찍고 중간에 밥을 먹는 것인데 포인트 한 개 한 개가 다 절경이었다.

니키타에서 바라본 후지르 마을의 아침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2번 포인트

첫 번째 투어 포인트는 사실 부르한의 바위랑 별 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냥 추웠다. 다른 투어객들도 사진 한 두장만 찍고 서둘러 차에 탔다. 그리고 두 번째 포인트에 도착하자 누구 할 것 없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사실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사진을 보고 갔다. 그래서 빙판이길 바랬는데 아직 다 얼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한다고 해서 아쉬웠는데, 여기는 약간 부둣가처럼 보였는데 얼음이 진짜 적어도 빙하, 오버 조금 더 보태면 우주에 어느 행성처럼 얼어 있었다.


가이드 겸 운전기사 아저씨가 차에 타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사람들이 차에 탄다. 밖에 30분 이상 맨몸으로 서 있기 힘들 만큼 추운 날씨이다. 바람은 또 어찌나 차가운지. 시베리아 벌판이 춥긴 춥다.

3번 포인트는 절벽
이번 여행의 컨셉샷 '호호샷'

여기가 섬이고 건너편이 육지인데 그 반대로 느껴진다. 정말 크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이칼 호수.

알혼섬 북쪽 끝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알혼섬 내에서도 곧잘 러시아 유심을 통해 데이터가 터졌었는데 여기 북쪽 끝으로 오니 사람이 사는 흔적도 안 보이고 데이터는커녕 전화도 터지지 않았다.

4번째 포인트인 북쪽 끝에서 시간을 제일 많이 줬었던 것 같다. 한참을 걸어서 절벽을 타고 북쪽 끝에 도착했다. 날씨가 맑아서 하늘이 참 예쁘고 호수도 근사해 보이지만, 진짜 얼어죽을뻔 했다. 세젤춥.

차로 갈 수 있는 북쪽 끝

4번째 포인트 관광을 맞히고 차로 돌아오니 기사님께서 점심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너무 허겁지겁 먹는 바람에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다.


빵과 치즈, 구운 감자와 바이칼 호수의 명물 오믈 구이, 그리고 따뜻한 홍차.

친절한 안나마리가 흔한 이 동네 스타일의 식사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날 처음 알았다. 홍차에는 설탕을 많이 넣어야 맛있다는 것을!


다른 포스팅들을 보면 위 사진 옆 나무판 위에서 날씨가 좋으면 식사를 하기도 하는 것 같았으나, 오늘 만약에 밖에서 먹었으면 한입 먹고 다들 체했을 것이다.

하트 바위 혹은 날개 바위

식사 후 5번째 포인트로 이동했다. 이동만 시켜주던 기사님께서 직접 내리시더니 카메라를 달라고 하시곤 팔을 벌려 포즈를 잡으라고 하신다. 그럼 저 하트 모양의 바위가 날개로 바뀐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바위로 갔다. 나는 너무 추워서 가지 않고 근처에 있었다. 

승리의 나이키! 순간 포착 나이스~

그리고 혼자 이러고 놀았다.

마지막 6번째 포인트

다섯 번째 스폿에서 여섯 번째 스폿까지는 은근히 길게 이동했다. 살짝 졸았다. 섬의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Uzur)이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안 사는 유령마을인 줄 알았는데 줄에 묶여있는 개가 있는 걸로 봐서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기사 아저씨가 블라 블라 설명해주고 안나마리가 알아듣길래 여기 사람 사는 마을 이냐니깐 모른단다. 대체 무슨 말을 들었을까 궁금했지만 더 물어보지 않았다. 안나마리도 러시아어를 듣고 독일어로 생각해서 한국어로 설명해주려면 힘들 것이다.

손은 넣을만 했다. 대신 빼는 순간 손목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된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에서 바이칼 호수 물에 손을 씻으면 3년인가 5년을 더 산다라는 속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손이 깨질 것 같은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씻었다. 러시아 유학생들과 운전기사 아저씨는 금시초문이라며 나를 신기하게 봤다. 한국 티브이 프로그램이 날 낚은 것 같았다. 설국 열차에서 팔을 열차 밖으로 빼고 얼리던 고문 장면이 오버랩됐다. 이런 고통이었을 것이다.


바이칼 호수를 다녀온 다음에 지인이 질문을 했다.

누군가가 호수에는 파도가 지치 않는다고 하던데 바이칼 호수도 파도가 없냐고 물었다.

엄청 친다 파도. 여기는 호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바다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깊고 맑은 호수 바이칼.

어렸을 적 책으로 보고 상상해왔던 바이칼 호수와는 살짝 다른 이미지였지만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여행을 했기에 만족한다. 그리고 진짜 사진에서는 정말 1도 안 느껴지지만 이렇게 추운 날씨는 정말 오래간만에 경험해본 것 같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 호수 전체가 꽝꽝 얼어있을 때.


https://youtu.be/VQUrjKw-AZo

알혼섬 후지르 마을의 일몰 타임랩스

투어가 끝이 나고 여행객들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이르쿠츠크부터 같이 들어왔던 동양인 소녀와 한마디도 못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국어가 가능한 안나마리 덕분에 외롭지 않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일몰 타임랩스에 도전했다. 시베리아 벌판의 맹추위에 정신 나간 짓이었다. 한 시간을 밖에서 버티면서 고프로 주변을 지켰다. 위의 영상만큼 예쁘게 안 찍혔으면 다시는 일몰 타임랩스를 안 찍었을 테지만 너무 잘 나와서 이 정신 나간 짓을 앞으로의 여행에서 몇 번 더 하게 된다.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면 부럽다고들 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당장 짐 챙겨서 출발해라. 여행은 시간과 돈이 아니다. 결심이다.


혼자 다니면서 독사진은 어떻게 찍냐고들 물어본다. 혼자 여행 왔다고 저 큰 섬에 나 혼자 있는 건 아니다. 말하면 다 찍어준다. 그리고 셀카를 찍기 위해 어깨 빠지도록 고프로와 셀카봉과 삼각대와 미러리스를 챙겨 온 것이다. 


혼자 왔지만 혼자 하는 여행은 없다. 은둔형 외톨이도 아니고.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 예쁜 옷 몇 개 빼고 어깨 빠지도록 장비를 가져오는 데에는 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기회비용이지만. 

나는 패션보단 장비가 더 중요한 1인.



이르쿠츠크 중앙시장 - 알혼섬 왕복 버스비 = 왕복 1,600 루블 (약 3만 2천원)

*성수기에 예약 안하면 자리 없을수도 있음

*버스기사에게 다이렉트로 요금 지불시 편도 800루블임. 숙소끼고 예약하면 조금 더 비쌈


알혼섬 니키타 숙박비 = 최저 1인 1박에 1,600 루블 부터

*사전에 30% 선입금하고 체크인할때 나머지 지불 (카드됨)

*거주지등록비 명목으로 200루블 요구함


알혼섬 북부투어 = 인당 900루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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