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광장 = 모스크바 = 러시아
12월의 어느 새벽 4시.
이르쿠츠크부터 3박 4일간 달려온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운 좋게 호스텔에 얼리 체크인을 하고 4일 만에 샤워도 했다. 잠시 짐을 정리하고 쉬다가 점심때쯤 모스크바의 중심으로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그리고 모스크바.
모스크바는 모스크바스러웠다.
숙소부터 붉은 광장까지 걸어가면서 본 모스크바는 확실히 앞선 두 도시와는 달랐다.
30분 정도 걸었을까? 굼 백화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근두근.
이제 고개만 돌리면 붉은 광장, Red square 레드 스퀘어이다.
붉은 광장에는 성 바실리 대성당(테트리스성), 크렘린궁, 레닌의 묘, 러시아 역사박물관, 카잔 성당 등이 있다. 사실 이것만 봐도 모스크바의 8할은 본 것이다.
믿을 수 없다. 내 앞에 성 바실리 성당이 있다니.
말로 표현 못한다. 사진 1억 번 봐도 감흥 없다. 직접 봐야 한다.
나도 물론, 수많은 사진과 무한도전에 나왔던 장면을 보고 이곳에 왔지만 특히 성 바실리 대성당은 눈으로 직접 보는 그 감동이 어떤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전달이 안된다.
두말해야 입 아프겠지만 "성 바실리 대성당"은,
건축의 전체 역사 속에서 필적할 만한 예가 없는 구조를 지녔다는 그 건물.
그리스도에 미친 바실리가 만든 잔혹한 황제 이반 대제의 기념물.
게임 테트리스의 실사판이다.
성 바실리 대성당에 넋을 놓고 있다가 뒤를 돌아보니 겨울에만 열린다는 테마파크가 광장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바퀴 둘러보는데 먹을거며 놀거리며 딱 크리스마스 분위기이다. 얼큰한 어묵 국물을 팔았다면 자리 잡고 앉아서 마셨을 것 같다.
눈이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붉은 광장은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모스크바에 있는 5박 6일 동안 거의 매일 붉은 광장에 출근 도장을 찍었는데 여기는 눈이 내려서 쌓일 틈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성 바실리 대성당, 크렘린 궁, 스탈린의 묘, 러시아 역사박물관, 카잔 성당, 부활의 문 그리고 굼 백화점 까지.
모스크바, 아니 러시아가 이곳에 다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차오르는 감동을 뒤로하고 3박 4일간 누리지 못한 문명의 혜택을 잠시 누리기로 했다.
커피도 한잔 하고, 환전도 하고, 유심도 새로 바꿨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날이 박 모 대통령의 탄핵안이 통과된 날이었다.
12월의 모스크바는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부터 어두워진다. 이 말은 오후 4시부터면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굼 백화점의 조명이 정면에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충분히.
성 바실리 대성당은 확실히 낮보다 더 현실 같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지?
사실 구글 지도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지나칠 뻔했던 카잔 성당.
주변에 너무 화려한 건물들이 많아서 이 순백의 건물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르쿠츠크에서도 봤고 여기에도 있고 다음에 갈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도 있는 카잔 성당은 정작 카잔이라는 지역에는 없다고 한다.
이름이 카잔 성당인 이유는, 카잔의 성모 이콘(성화)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입구 위쪽에 있는 성화가 카잔의 성모 성화이다.
카잔 성당과 러시아 역사박물관 사이에 부활의 문이 있다. 그리고 부활의 문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러시아 사람들은 '유럽의 중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반대로 유럽 사람들은 모스크바의 중심이라고 하고.
가만히 유럽의 중심을 구경하다 보면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전을 조용히 수거하는 아저씨 한 분도 볼 수 있다. 경쟁자는 없는 듯했다. 약간 경쟁의식이 생겼지만 참았다.
부활의 문을 나와서 좌측으로 크렘린 궁 벽을 타고 산책을 하다 보면 영원의 불꽃을 볼 수 있다.
각 도시마다 영원의 불꽃이 한 개씩은 있다. 무명용사들을 기린다고 하던데 나는 저 불이 가스로 태우는지 석유로 태우는지가 궁금했다. 아직도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1년 365일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영원의 불꽃을 지나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이 다리가 크렘린 궁으로 걸어서 들어가는 다리이다. 다리 이름도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크렘린 궁 투어를 하려면 붉은 광장 쪽에서 못 들어간다. 붉은 광장 쪽으로 나갈 수는 있다. 반대쪽인 이쪽에서 티켓을 사고 이쪽으로 입장해야 한다.
낮에 봤던 붉은 광장보다 밤에 본모습이 더 아름다워서 크렘린 궁 투어도 해질녘에 해보기로 했다. 오늘 정도 날씨면 해가 떨어져도 걸어 다니면서 볼 만할 것 같다.
소련과 러시아의 수도, 그리고 그 중심인 붉은 광장.
내가 지금 그곳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