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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th_한겨울 해질녘 크렘린 투어의 2가지 선물

일몰 & 강추위

by 도피오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에서 보면, 저 멀리 크렘린 궁전이 보인다. 그래서 걸었다. 근데 은근히 멀다.

IMG_4110.JPG 저 십자가 드신분도 분명 유명한 분일 것이다.

전철로 1 정거장이라서 걷긴 했는데 600원 아끼지 말고 전철 탈걸 그랬나 보다. 사진상 하늘은 분명 맑지만 이날은 아이폰 시리도 인정한 덜덜덜 추운 날씨였다.

fullsizeoutput_7c8.jpeg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 이하였다.
IMG_4111.JPG 국립 도서관

한참을 추위와 싸운 끝에 국립 도서관 역에 도착했다. 이제 지하도만 건너면 크렘린 입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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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를 건너 잘 나오면 매표소 바로 앞으로 나온다. 잘 못 나오더라도 크렘린 궁의 위엄을 느끼며 아래쪽 통유리 건물로 오면 입장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현재 시각 12월 중순의 어느 날, 오후 3시.

IMG_4114.JPG 티켓 구매 후 위 사진 속 보안검색을 통과해야한다.

크렘린 궁 투어를 이 시간에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낮의 모습도 괜찮지만 밤에 불이 들어온 다음에 야경으로 보면 더 멋졌다. 그래서 궁 안쪽도 야경으로 보면 더 멋질 것 같아서 오후 3시 지나서 해 떨어지기 시작하면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입장료는 1인당 500 루블.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티켓을 사면 궁 내 관광지도를 한 장 준다. 혹시라도 겨울에 간다면 나처럼 지도 처음 받아보고 어디에 뭐 있는지 찾아보지 말고 미리 공부해서 갈 곳을 알아두면 좋다. 너무 추웠다 진짜. 미리 공부를 안 하면 어느 건물이 실내 입장이 가능한지 눈치로 찾아야 한다. 그 시간이 너무 가혹하다.

IMG_4115.JPG 성으로 들어가는 다리에서 본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의 일몰

두근두근.

드디어 러시아의 심장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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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로 딱 들어가면 뭔가 휑하다.
눈은 깔끔하게 다 치워져 있고, 날은 춥고, 사람은 없다.
그래도 보안요원 같은 사람들이 곳곳에 있는데 횡단보도가 없는 곳의 인도에서 도로로 내려오면 혼난다. 횡단보도로만 건넙시다. 인도도 관광객이 갈 수 없는 길이 존재한다. 지나가는데 누군가 소리 지르면 그 길이 내부 직원용 길일수 있으니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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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헤매다 제일 높은 종루를 찾았다. 그 유명하다는 이반 대제의 종루. 그 좌우에는 유럽에서 직경이 제일 크다는 왕대포와 깨진 종이 있다.


잘 알겠지만, 왕대포는 실제로 발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보통 전차를 보더라도 직경이 저거보다 작고 총 길이가 저것보다 길 텐데 저건 너무 짧고 굵다. 어쩌면 발사 자체가 안 되는 모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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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유명한 깨진 종.

옮기다가 깨졌다는 설과 불이 났는데 물을 부어서 깨졌다는 설들 다양하다. 에밀레종이 더 큰 것 같다 개인적으론.


사실 내 감성이 이 정도는 아닌데 이 망할 날씨가 감성까지 같이 얼린 것 같았다. 이 추운 날 실내에라도 들어갔으면 괜찮았을 텐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반 대제의 종루는 분명 입장 가능한 건물인데 못 들어가게 막는다. 나는 실내가 보고 싶은 게 아니고 단지 추위를 피하고 싶었던 건데...

IMG_4122.JPG 나를 구원해준 수태고지 성당 (정면)

진짜 너무나 추워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매다가 드디어 찾았다. 이름도 모르고 관광객 몇 명이 들락날락하길래 일단 들어갔다. 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왕족들의 전용 성당이라고 본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는 수태고지 성당이 맞는 것 같다. 안에 역시 이콘들이 가득한데 거친 벽면에 그대로 그린 듯했다. 그림을 걸어놓거나 부드러워 보였던 다른 성당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IMG_4123.JPG 우스펜스키 대성당

크렘린 궁 안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우스펜스키 대성당을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분명 가이드 지도에서는 입장 가능한 건물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늦어서 그런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사실 추워서... 너무 추워서... 추위를 피한 장소로만 생각했었는데 뒤늦게 찾아보니 대단한 건물이었다.


- 우스펜스키 대성당 (카잔 성당처럼 여기저기 많이 있다)

- 1479년 건축

- 벽과 지붕에 성화를 그리기 위해 동원된 화가만 1천 명 이상

- 12세기의 성 게오르기 상과 13~14세기의 삼위일체 상이 유명하며, 나폴레옹 군대가 퇴각할 때 훔친 300kg의 금과 5톤의 은을 되찾아 만들었다는 샹들리에가 있다. 러시아에서는 국교 대성당이라고도 부르며 이곳에서 황제의 대관식과 모스크바 총주교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스펜스키 대성당 (러시아에서 보물찾기, 2006., 아이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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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겨우 몸을 녹이고 나왔는데 이제부터 일몰 타임이다. 나는 또 정신 못 차리고 일몰 타임랩스 촬영을 시작했다. 이르쿠츠크에는 그래도 1시간을 버텼는데 여기는 와 40분이 한계다. 해가 떨어지고 하늘이 어둑해지는 모습까지 담아야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 근사하게 나오는데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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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온 곳과는 반대쪽으로 나왔다. 나오는 길에 뒤돌아 봤더니 이반 대제의 종루가 멋들어지게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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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보이는 문으로 나가면 붉은 광장이다. 문 틈으로 보이는 것이 굼 백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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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모스크바의 제설은 끝내준다. 붉은 광장을 처음 봤을 때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염화칼슘을 뿌려서 눈을 치워놨었는데 크렘린 궁 안에는 실제 대통령 직무실도 있어서 그런지 바닥이 얼 틈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차도랑 인도만 치워서 눈이 남아 있는 모습.


사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사진 속에 크렘린 궁 안에서 유명한 건물들은 다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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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궁에서 나오니 성 바실리 대 성당이 또 나를 반겨준다.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이다. 미묘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배경이 살짝 달라지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느낌도 있다.


아무튼 1일 1 바실리 합시다.


야경을 보겠다며 오후 3시 넘어서 시작한 한겨울의 크렘린 궁 투어는 얼음 궁전 투어였다.

일몰과 추위를 남겨준 크렘린 궁 투어.

사전에 조금만 공부했더라면 더 자세히 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후회하면 뭐하리.

나중에 또 가서 잘 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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