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01. 자전거 탄 풍경 [보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제 네 것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

by 밍구


“어머, 오리를 잡다니! 도대체 시우는 누구를 닮은 거야?”

두 손으로 연못에서 잠자던 청둥오리를 잡은 시우를 보며 함께 공원에 놀러 온 형미 언니가 화들짝 놀라 내게 묻는다.


일곱 살 시우는 자신을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속 '허클베리 핀’이라고 자처하는 나의 큰 아이다. 까까머리에 파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아직까지 첫 니를 지붕 위로 던지지 못한 외양은 허클베리 핀과 같은 구석을 좀처럼 찾기 힘들지만, 늘 나뭇가지와 돌을 줍고 청설모를 잡겠다고 나무를 타는 엉뚱하고 모험심 강한 면은 그와 닮은 듯도 하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을 수십 년째 동경하는 엄마와 ‘말괄량이 삐삐’ 머리를 고수하는 여동생 나경과 ‘키다리 아저씨’처럼 든든한 지원군 아빠가 있다.

우리 네 식구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 러시아에 직장을 잡은 남편은 청혼할 때 분명 해외살이가 오 년이 넘지 않을 거라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러시아에서 올해 여덟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으며 앞으로 몇 번을 더 맞이할지 알 수 없다. 시우가 세 살 터울의 여동생을 보기 전까지 우리는 모스크바로부터 55km가량 떨어진 모스크바 외곽의 작은 동네 ‘라멘스코예(Раменское)’에서 살았다. 신랑이 다니는 회사의 라면 공장이 그 동네에 크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공장입지를 정할 때 쫙 펼쳐 든 모스크바 주(州) 지도에서 라면과 비슷한 러시아어 발음의 지명이 사장의 눈에 들어 선정되었다는 우스갯소리의 진위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의 유머 덕분에 낯선 지명이지만 친숙하게 들리는 라멘스코예는 내게 러시아 친정동네가 되었고, 아들과 딸에게는 러시아 요람이 되었다. 한국사람 하나 없는 그 작은 동네에서 나는 신혼의 단꿈에 젖었고, 외로움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그곳의 삶을 들여다보고 돌아가는 친정엄마는 항상 많이 울었고, 시어머니는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표현을 쓰며 내게 더 잘해주었다. 편리함과 신속함이 당연시되는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이들의 눈에 그곳은 나를 측은하게 만드는 삶의 공간이었다. 그곳의 거리에서 나는 유년의 편린을 자주 마주쳤고, 그럴 때면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불러 함께 산책했다. 녹슨 육교와 담장 없는 기찻길, 떠돌이 개와 구걸하는 상이군인,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이름 모를 풀떼기를 파는 노인, 금세 망가질 것만 같은 장난감 조무래기를 파는 남자의 두툼한 손가락 끝에 걸린 담배 내음새.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첫 번째 집은 ‘개천 앞집’이었다. 지상에서 밑으로 난 돌계단을 열두 걸음 정도 내려가면 개천을 올려다보며 엎드린 파란 대문 집이 우리 집이었다. 옆집의 초록 대문에는 ‘개 조심’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어 그 앞을 지나갈 때면 난 늘 무섭기도 하고 조심해야 할 개의 존재가 궁금하기도 하였다. 장마철이면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물이 떨어져 안방을 적셨고, 결국에는 항상 개천 물이 넘쳐 마당과 더 깊숙이 들어앉은 부엌에 물난리가 났다. 나와 오빠는 엄마를 도와 세숫대야로 물을 퍼 다시 개천에 흙탕물을 퍼 날랐고, 그 물은 뒤돌아서면 우리보다 더 빨리 돌계단을 내려와 다시금 집으로 흘러들었다. 반대로 하천물이 말라비틀어져 개천 바닥이 흉하게 드러났을 적에는 천 밑으로 오빠를 따라 뛰어 내려가 신발 던지기를 하고, 개천 밑바닥을 관찰하며 놀았다. 우리 중 그 누구도 롤러브레이드와 자전거, 킥보드와 같은 바퀴 달린 물건을 가지지 못했다. 그 대신 우리의 속도는 두 발끝에 걸려 있었고, 우리의 눈높이는 늘 어른들의 발밑보다 너 낮은 곳의 공터와 개천에서 하늘을 올려 보았다. 개천은 어린 내게 공포의 대상이면서 놀이의 공간이 되어주었다.


결혼한 다음 해 첫째를 낳았다. 시우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고 매일 긴 산책을 하는 시기가 되자 나는 매일 숲으로 기찻길로, 혹은 아직 건물이 들어설 계획이 없는 공터로 유모차를 밀고 다녔다. 아마 그때부터 슬슬 그 동네에 마음을 빼앗긴 것 같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이는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쓰러진 나무에서 휘두르기 알맞은 크기의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고, 돌이란 돌은 몽땅 주워 유모차 짐받이에 보석처럼 실었다. 숯댕이를 분필 삼아 그림을 그렸고, 키 작은 나무에는 신발 끈을 동여매고 올라보기도 하고, 비 온 뒤 웅덩이가 생기면 그곳에서 첨벙거리며 놀았다. 세 살 버릇은 정말 여든까지 가는 것인지 시우는 모스크바 시내의 정갈한 공원이나 놀이터에서도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논다. 책 속에서 허크를 만난 이후로는 뗏목을 만들어 친구와 호수를 유랑하고, 밤 열두 시에 죽은 고양이를 안고 공동묘지에 가겠다는 꿈을 꾸는 일곱 살 소년으로 자랐다. 그리고 네 살배기 딸아이도 제 오빠를 따라 성에 갇힌 공주 인형 대신 나무 총을 들쳐 메고 이상한 가면까지 뒤집어쓴 채 함께 모험을 준비한다. 가만 보면 큰 아이보다 작은 아이가 앞장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촌놈 같죠? 제가 공터 출신이에요. 생긴 건 제 아빠 붕어빵인데 노는 건 저 닮은 것 같아요. 제가 골목대장이었거든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형미 언니에게 대답하고는 잠자다가 봉변당한 오리를 보기 위해 아이들에게로 달려갔다.


***

나경아, 엄마는 너를 키우며 이따금 어린 시절의 나를 엿보는 기시감이 들 때가 있어. 할머니 말에 의하면 세 살 위의 오빠를 가진 나와 너는 행동거지가 참 많이 닮았다고 하더구나. 엄마는 유년시절의 기억과 경험이 그 사람의 자양분이 되며 고유의 분위기를 만들어준다고 여긴단다. 세상의 모든 처음이 곳곳에 자리한 그 시절을 통과하는 네게 나는 안 된다는 말 대신 많은 것들을 너의 방식대로 접하고 받아들이게 놔두고 싶어. 네게는 심지어 톰 소여에게 허클베리 핀이 모험심과 용기를 나누어 주듯 러시아의 자연을 온몸으로 즐길 줄 아는 오빠가 있으니 엄마는 너희의 산책에 훼방꾼일 뿐이더구나. 엄마는 네가 깍쟁이처럼 굴지 않고 시우를 따라 자연 속에서 지저분하여도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노는 모습이 참 좋아. 비록 요즘은 코로나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청결과 위생이 중요시되는 시국이지만, 그 와중에도 엄마는 오리를 잡겠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네 오빠와 그 뒤를 새끼 오리처럼 졸졸 쫓아다니며 주머니에 도토리를 주워 담는 너를 혼낼 생각이 없어. 아이라면 응당 그렇게 놀아야 하니까. 아마 한국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이 모든 것들이 이곳이기에 가능한 일이란 걸 엄마도 잘 알아. 혼자였을 때는 불행 같았던 이 고독하리만치 울창한 자연이 너네로 하여금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이자 행복이 되었다. 그렇기에 더욱 자연 속에서 아이의 얼굴로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 여타 도시에서는 시골 아이처럼 키우기도, 자라나기도 힘들 테니 말이야.

아가야, 네가 자라 어른이 되어 매일 바라볼 그곳의 풍경은 어떠한 곳일까. 그곳이 어느 곳이든 그곳 어귀에 혹시 놀이터가 있다면 그곳 벤치에 앉아서 이 노래를 들어볼래. 신발도 아니 신고 양말도 벗어던지고 놀이터 모래판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모형 모래 틀을 소반 삼아 벌레 밥이라며 정성스레 차려 놓는 내게 삼십여 년 전 개천 기슭에서 잔풀을 뜯어 소꿉놀이하던 내가 깃들어 있음을 마주한 날이었지. 그날 엄마는 이 노래를 몇 번이고 되돌려 들었어. 어른의 눈에는 별 볼 일 없는 곳에서 아무런 이와 아무 일도 아닌 것을 하며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내어 무수한 것을 그 속에서 자라나게 함으로써 훌륭한 하루를 보내는 너의 유년시절을 엄마가 보물처럼 귀히 간직하고 있을게. 네가 어린 시절의 너를 궁금해할 때면 ‘유년시절’이라는 인생의 젖줄을 네 마음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득 퍼올려 건배하며 엄마가 하나하나 소상히 일러줄게. 그러니 딸아, 실컷 놀렴. 놀다 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듯이 어린 날들도 참 짧은 것 같더라.


***

Track 01.

자전거 탄 풍경 [보물] 작사·작곡 강인봉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아침에 눈뜨면 마을 앞 공터에 모여

매일 만나는 그 친구들

비싸고 멋진 장난감 하나 없어도

하루 종일 재미있었어


좁은 골목길 나지막한 뒷산 언덕도

매일 새로운 그 놀이터

개울에 빠져 하나뿐인 옷을 버려도

깔깔대며 서로 웃었지


어색한 표정에 단체사진 속에는

잊지 못할 내 어린날 보물들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좁은 골목길 나지막한 뒷산 언덕도

매일 새로운 그 놀이터

개울에 빠져 하나뿐인 옷을 버려도

깔깔대며 서로 웃었지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술래잡기 고무줄 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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