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반려동물을 간절히 키우고 싶을 때
“엄마! 깜상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깜상이!”
산책하던 중 우연히 주인과 산책 나온 슈나우저를 가리키며 아들이 외쳤다.
“우와, 나경이가 좋아하는 멍멍이다, 멍멍이!”
시우의 손끝이 향한 방향으로 딸이 방방 뛰며 덩달아 외쳤다.
나도 깜상이란 말에 두 아이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마음이 향했다. 그곳에는 정말 나의 깜상과 똑 닮은 슈나우저가 있었다.
가을바람이 제법 쌀쌀한 가을 저녁이었다. 전철을 타고 퇴근하던 아빠를 마중 나간 엄마는 역곡역 앞 택시 정류장 근처에 차를 세웠다. 운전을 못 하는 아빠와 그의 기사 노릇을 하는 엄마는 이상하리만치 늘 약속 장소가 어긋났다. 엄마는 내게 아빠와 불필요한 언쟁이 오갈 새 없도록 계단 위 남부역 출구에서 아빠를 기다려 모셔오라 하였다. 교복차림의 나는 차에서 내려 역곡역 계단에 올라서는데 계단 중간의 조금 널찍한 공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그 무리에서 아빠의 구두 뒤축이 내 눈에 쏙 들어왔다.
“아빠, 거기서 뭐 하세요?”
나는 아빠를 찾았다는 반가움에 아빠에게 팔짱을 끼며 물었다.
“민아야, 너 잘 왔다. 너는 여기서 어떤 놈이 제일 예쁘냐? 응?”
나를 보자 배시시 웃는 아빠에게서 술 단내가 났다. 쭈그리고 앉아 아빠가 바라보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새끼 강아지였다. 상자는 두 개였는데 한 상자에는 새하얀 강아지만 여덟 마리, 다른 한 상자에는 얼룩덜룩한 강아지 네 마리와 새까만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새하얀 강아지만 있는 상자 속 어린 그것들은 방금 틀어낸 목화솜처럼 뽀송뽀송하고 서로의 품을 파고들며 꼭 한번 만져보고 싶은 행색을 하고 있었다. 옆 상자의 얼룩덜룩 강아지도 오종종 걷는 모습이 귀여웠으나 검정 강아지 한 마리는 상자 귀퉁이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그 검정 강아지가 눈에 들어 손으로 가리켰다.
“저 검둥개가 예쁘다고? 아니 여기 이 하얀 강아지가 예쁘지 않아? 아니면 이 바둑이나.”
아빠는 강아지의 턱을 어루만지며 내게 동의를 구하듯 재차 물었다.
“아니. 걔네는 너무 흔해. 나는 이 검둥이가 마음에 들어. 근데 살 것도 아닌데 뭘 자꾸 물어요. 빨리 가요. 엄마가 밑에서 기다려요.”
나는 쭈그렸던 다리를 펴며 아빠에게 말했다.
“민아야, 우리 한 마리 사갈까? 네가 너무 귀여워서 사달라고 졸랐다 하면 엄마가 덜 혼낼 거 아냐. 다시 골라봐 봐. 하얀 놈 중에 아빠는 얘가 제일 귀여운데.”
아빠는 이미 흰 강아지를 사기로 마음먹은 눈치였다.
“따님 눈이 아주 고급인 걸요. 얘는 미니어처 슈나우저예요. 여기 있는 애들 중에 제일 비싸요. 슈나우저는 다 팔리고 얘 하나 남은 거예요.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 되어서 이렇지 엄청 활달한 놈이에요. 후회 안 하실 거예요. 따님도 오고 했으니 싸게 드릴 테니 가져가요.”
개장수는 노련하게 개의 주인이 될 이들을 알아보았고, 나는 가을밤보다 더 까만 강아지를 품에 안고 차에 탔다. 엄마의 지청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빠와 나는 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생후 1개월 된 까맣고 작은 생명을 쓰다듬느라 정신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흰 우유를 샀다. 혼은 냈지만, 내심 유년시절에 코카라는 강아지를 오랫동안 길렀던 엄마이기에 엄마는 강아지를 위한 이불과 물그릇을 장만하느라 분주했다.
“아빠, 얘 우유 먹는 것 좀 봐요. 이름은 뭐라고 하지? 작고 새까마니까 콩이 어때?”
나는 혹처럼 만질만질한 강아지의 머리통을 한없이 쓰다듬으며 말했다.
“깜상이지, 깜상이. 아니 하얗고 예쁜 강아지 냅두고 너는 이렇게 까만 놈을 고르냐. 아빠는 아까 걔가 예쁘던데.”
아빠는 내심 역에 두고 온 하얀 강아지가 눈에 밟힌 모양이었다.
깜상은 커갈수록 신기하게 눈썹과 턱, 발등의 털이 하얗게 변해갔다. 꼬리는 개장수가 자른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라디오 안테나를 길게 펼치기 전 모양처럼 뭉뚝했다. 깜상은 여고생이었던 내가 여대생이 되고, 결혼하여 러시아에 떠날 때까지도 집을 지켰다. 일 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처음 친정집 문턱을 넘을 때에도 깜상은 내 품을 파고들어 얼굴을 정신없이 핥았다. 첫째를 임신하여 만삭이 된 내 배 위에 서슴없이 올라와 십삼 년 전의 그 역 작은 박스에서 처음 데려온 날 밤처럼 엎드려 내게 몸을 맡겼다.
깜상의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부모님이 집을 비웠을 때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체를 하였고, 나이가 있어 회복하지 못하고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러시아에 있는 내게 부모님은 깜상의 상태를 알리지 않다가 일어나지 못할 거란 걸 받아들인 후에는 영상통화로 깜상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 주었다. 나는 자그마한 휴대폰 액정에 누워있는 깜상을 보자마자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디귿 모양으로 누워있던 깜상은 날 보자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풀려있던 눈에 총기가 들어 화면 속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나는 그 모습이 가여워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깜상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아빠 공장 뒤편 양지바른 곳에 아빠와 엄마, 그리고 오빠가 함께 깜상을 묻었다. 나는 첫째를 젖 먹이던 때였는데 닷새 젖이 말랐다. 그해 초겨울은 우리 가족에게 더없이 춥고 모질었다.
러시아에서는 슈나우저를 마주치는 일이 적었고, 앞산을 매일 오르는 엄마는 심심치 않게 미니 슈나우저를 만났다. 성견이 된 깜상과 매일 앞산으로 산책하던 엄마가 하루는 내게 말했었다. 자신의 죽은 슈나우저와 깜상이 매우 닮았다는 어떤 아줌마가 깜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이제는 엄마가 그 아줌마가 되었고, 나도 러시아 거리에서 아주 간혹 예기치 않게 일 년에 한두 번 슈나우저를 만날 때면 그 아줌마가 되곤 한다.
***
나경아, 엄마가 초등학생일 적에 학교 앞에서 작고 노란 병아리를 많이 팔았어. 정문을 나설 때면 좁은 종이상자 안에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삐약삐약 소리를 내는 병아리의 몸값은 단돈 오백 원이었어. 엄마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병아리가 얇은 비닐봉지에 담겨 어린 주인의 손에 쥐어지는 걸 모두 지켜본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어. 네 할머니는 그 병아리는 ‘기계 병아리’라며 절대 사 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는데 어린 엄마는 그게 진짜 병아리가 아니고 로봇 병아리라고 받아들인 거야. 그래서 그다음 날에는 더 유심히 병아리를 관찰하였는데 암만 봐도 엄마 눈에는 그 병아리가 진짜 살아있는 병아리로 보였더랬지. 한번 만져보고 싶었는데 금기를 어기는 것 같아 손을 뻗지 못하는 찰나 엄마의 반 친구가 병아리를 사는 게 아니겠니. 그 이후로 나는 학교 앞이 아니라 그 친구의 집에서 병아리를 관찰했지.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기계 병아리는 시름시름 앓다 죽어 버렸어. 나는 엄마에게 병아리가 죽었다고, 기계가 아니었다고 말했지.
우리 집에는 두 마리 강아지가 살고 있지. 너의 골든 리트리버와 오빠의 시베리안허스키는 정말 이제 인형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너희의 오랜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어. 깜상이 세 살 때였어. 3박 4일 내가 여행을 다녀온 날이었지. 때마침 중성화 수술을 한 깜상은 마치 꽃받침 같은 모형의 깔때기를 목에 두르고 있었어. 김포공항으로 마중 나온 부모님 품에서 뛰어올라 와락 내 품에 안긴 깜상은 그 불편한 깔때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혀를 더 쑥 빼 정신없이 내 얼굴을 핥아댔어. 그리고 아주 반가운 마음에 흥분한 나머지 수술부위가 터져 내 옷에 잔뜩 선 붉은 피를 범벅하고 말았지. 그때는 그 옷을 못 입게 될 만큼 피떡칠을 해놓은 깜상을 조금 혼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날 위해 누가 그렇게 온몸으로 정열적으로 기쁨을 표하며 반겨줄 수 있을까 싶어. 아마 너와 시우의 애착 인형이 진짜 강아지였다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의 주인이 너무나 반갑고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 모르고 너희의 얼굴을 핥고 또 핥고 얼싸안고 뒹굴뒹굴했을 것이야. 너와 오빠가 인형의 코를 물고 온몸으로 인형을 짓누르듯 말이야.
네 오빠도 한동안 진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졸라댔지. 그때 엄마가 깜상이 앨범을 보여주며 오빠 앞에서 엉엉 울었어. 그랬더니 시우가 자신의 인형을 가져와 끌어안고는 너는 안 죽으니까 나와 평생 같이 살자 하더구나. 반려동물, 그 치명적인 매력과 작별의 사무치는 아픔까지 모두 네가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면 이 노래를 가만히 들어 보겠니.
***
Track 03.
넥스트(N.EX.T) [날아라 병아리] 작사·작곡 신해철
육교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다.
나는 어린 내 눈으로 처음 죽음을 보았던
1974년의 봄을 아직 기억한다.
내가 아주 작을 때
나보다 더 작던 내 친구
내두손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작은 방을 가득 채웠지
품에 안으면 따뜻한 그 느낌
작은 심장이 두근두근 느껴졌었어
우리 함께 한 날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지
어느날 얄리는 많이 아파
힘없이 누워만 있었지
슬픈 눈으로 날개짓 하더니
새벽 무렵엔 차디차게 식어있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 말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 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 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