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47. 잔나비 [꿈과 책과 힘과 벽]

47. 네 마음을 샅샅이 산책할 때

by 밍구


“엄마, 이건 뭐야?”
딸아이가 책상 서랍을 뒤지더니 칼국수 면처럼 납작한 보라색 선의 이어폰을 집어 들며 묻는다.
“응, 그건 이어폰이야. 양쪽 귀에 꽂고 휴대폰에 연결해서 들으면 노래가 나와.”
나는 엉킨 선을 풀며 선의 끝과 끝을 나경에게 보여주며 설명한다.
“노래는 아빠 차에서만 듣는 거잖아. 집에서는 스피커로 듣잖아. 이건 이상해.”
육아가 시작되면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물건. 엄마가 되기 전, 집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도, 미술관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도, 홀로 정처 없이 걷던 숲길에서도 나는 항상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지금은 책장서랍 가장 귀퉁이에 라면찌꺼기처럼 쭈그리고 있는 이어폰이 한때는 빼먹으면 집에 다시 올라가 챙겨 나와야 하는 외출 필수품이었다.


둘째를 낳고 러시아로 돌아온 다음 해 다섯 살 된 첫째가 모스크바 한국 유치원에 입학하였다. 우리 집은 유치원과 도보로 오 분 거리였지만, 느즈막히 준비하여 유모차를 끌고 아이의 걸음에 맞춰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걷다보면 우리는 늘 지각이었다. 유년시절의 나는 집에서 전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병설 유치원에 전철을 타고 다녔다. 나보다 키가 작고 어리숙한 친구 정미와 함께였는데 내가 항상 언니처럼 굴었다. 정미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전철비로 쌍쌍바를 사 먹은 날이면 우리는 다 먹은 쌍쌍바 아이스크림 막대를 하나씩 나눠 쥐고 전철역 울타리 쇠 봉을 치며 그 길을 따라 집까지 한 정거장을 걸어오곤 했다. 그때의 전철길 풍경이 지금도 아스라이 떠오르는 걸 보면 유년의 기억이란 참 커다란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까닭에 나는 시우와 유치원을 함께 걸으며 모든 정경을 같이 기억하고 추억을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아이가 기억하는 첫 화면에 나와 제 어린 동생이 등장하는 건 살면서 따뜻한 힘이 되어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 돌잔치를 한국에서 작게 치르고 러시아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모두가 힘들었고 비정상적이었던 코로나블루의 첫해에는 암울과 불행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많이 말했다. 너무나 지치고 힘든 시간이 다른 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드높이 쌓였다. 고대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순간이 유보되거나 아예 지워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한 폭력적인 행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곳이 없어 더욱 숨이 막혔다. 나도 결단코 그해가 정말 많이 행복한 한 해였다고 회상할 수 없다. 그러나 한 해를 통째로 날려버렸다거나 지우고 싶은 한 해였다는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생각지 못한 팬데믹을 겪으며 여태껏 인생을 살며 감사히 여기지 못했던 일상의 소중함과 가족과 친구의 건강함을 몸소 느낀 건 값진 경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코로나 때문에 국외여행이 불가능하게 되며 내가 사는 이곳, 러시아의 매력에 다시금 빠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덕분에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켜켜이 잠복해있다는 삶의 중대한 비밀을 깨달았다. 네 잎 클로버의 행운보다 세 잎 클로버의 행복이 소중하다는 그런 식상한 말이 매일의 바람이 되었던 날들이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이 직장에 가고,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쏘다니는 자유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코로나를 겪지 않고는 몰랐다. 바이러스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쉬이 종식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모두가 묵인하고 있다. 아장아장 걷던 돌잡이 아기가 뜀박질하며 앞구르기를 하고, 색연필로 분홍돌고래를 그리고, 당근과 오이가 들어간 김밥을 야무지게 먹을 만큼 크는 동안 코로나는 떠나지 않고 우리 주변에 머무르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함께 코로나라는 전쟁을 겪은 상이군인들처럼 나는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전우애를 느낀다. 그러나 결코 우린 패잔병이 아니다. 코로나와의 장기전에 돌입한 우리는 슬기롭게 이 시간을 견뎌내는 지혜를 얻었으니까. 감정의 스펙트럼에서 행복과 불행은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상태가 달리 해석된다. 우리는 불행이라 여겼던 지점에서 지뢰처럼 숨어있던 행복을 찾는 법을 배웠다.


나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나의 삶을 '산책'이라 정의하고 싶다.
타국에 살게 되며 나는 공상이 더욱 깊어졌고, 그중 즐거운 공상은 한국의 거리 산책이다. 친정동네에서 160번 간선버스를 타고 대학로까지 가는 거리 풍경과 혜화에서 귀갓길에 전철을 타고 바라보던 밤 풍경. 그 속에서 나는 그치의 담배가 타들어 가는 걸 바라보았고, 그녀와 조그만 극장에서 연극을 봤고, 그이와 질펀하게 술을 마셨고, 그들과 서투른 합주를 했다. 여유를 갖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지금 당장 달려갈 수 없는 공간이기에 나는 향수병이 돋을 때면 그러한 마음속 산책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마치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 구보가 된 것처럼.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도시 전체가 락다운이 되며 지금 사는 러시아도 당장 내디딜 수 없는 공간으로 바뀌어버리자 나는 마음속 산책지를 러시아로 바꿨다. 한국만큼 여러 사람과 많은 곳을 누빈 건 아니었지만, 매 순간 함께했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자연에서 노는 법을 터득하는 아이의 옆에 늘 숨을 고르는 내가 있었다. 머릿속 러시아 산책을 통해 별것 아닌 작은 숲과 공원으로의 산책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해 여름 칠십여 일간의 강압적 제한조치가 풀렸다. 나는 첫사랑을 겪는 사춘기 소녀처럼 매일 인적이 드문 작은 정원과 호수공원, 울창한 숲으로 아이들을 데려갔다. 산책하며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다시금 움츠러들 겨울을 대비하여 심신을 단련했다. 더러워진 돗자리의 뒷면을 걸레로 쓱쓱 닦거나 흙먼지로 새까매진 우리들의 운동화를 빨고, 매일 아이들의 산책 가방을 챙길 수 있는 일상이 되돌아왔다. 물론 코로나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의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완벽한 복구가 가능한 것인지도 알 수 없으나 모든 것이 마비되었던 지극히 비정상적인 날들이 과거가 되었다는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나경아, 이동에 대한 모든 규제가 해제되던 날 엄마는 네 아빠에게 모스크바로 이사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미쉐르스키 공원으로 날 데려다 달라 했어. 대자연 속에서 삼림욕을 하며 그간의 고됨을 씻어내려 했지. 그런데 기이하게도 산책하며 나는 점점 화가 솟구쳤어. 죄지은 것도 없는데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석방한 출소자가 된 기분이었어. 나만 이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바보가 된 것 같아 분통하고 괘씸한 생각마저 들었지. 조금의 산책에 땀이 빌빌 났고, 오랜만에 쬐는 햇볕에 머리도 핑핑 도는 저질 체력이 된 내 모습에 속이 상했더랬지. 고작 칠십일이었지만, 코로나와는 별개로 내 나라도 아닌 타국에서 겪은 강력한 억압과 규제에 억눌렸던 내 자유에 대한 반발심리였던 것 같기도 해.
하루 종일 너희에게 시달리며 체력보다 정신적으로 몹시 힘들어서 하루의 끝이 매일 힘없이 고꾸라졌었지. 그렇게 매일 널브러뜨려놓은 저녁을 새벽에 일어나 정리하며 책상 속 웅크리고 있던 이어폰을 꺼냈지. 새벽에 깨어 부엌에서 요리하거나 거실에서 다림질할 때 혹여나 너와 시우가 깰까 두려워 이어폰을 끼고 이들의 음악을 참 많이 들었어. 칠십여 일간의 자가격리 기간에 꼼짝달짝할 수 없는 공간에 나와 너희뿐이어서 힘들었지만, 역설적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너희가 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단다.
딸아, 네 유년의 첫 기억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등장할까. ‘1.5m’라는 수치가 익숙할 거고, 손바닥과 마스크 표시의 기호가 문과 벤치, 쇼핑몰과 미술관 등 모든 곳의 만국공통어처럼 붙어 있는 걸 당연시하겠지. 고작 삼 년 일찍 태어난 시우가 너보다 자유로운 아기였다고 자조 섞인 말을 하는 엄마는 코로나 이전의 시간을 너희에 비해 너무 길게 누려서 미안하단 생각마저 든단다. 또다시 ‘봉쇄’라는 극한의 상황을 직면하는 날이 올까. 꼭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그렇게 운신의 자유가 제약되는 상황이 온다면 너도 엄마처럼 마음속 산책을 시작해봐. 그때는 마스크가 아니라 이어폰이 필수란다, 잊으면 안 돼


Track 47.

잔나비 [꿈과 책과 힘과 벽] 작사 최정훈 작곡 최정훈, 김도형, 유영현

해가 뜨고 다시 지는 것에
연연하였던 나의 작은방
텅 빈 마음 노랠 불러봤자
누군가에겐 소음일 테니
꼭 다문 입 그 새로 삐져나온
보잘것없는 나의 한숨에
나 들으라고 내쉰 숨이더냐
아버지 내게 물으시고
제 발 저려 난 답할 수 없었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갈 거야

꿈과 책과 힘과 벽 사이를
눈치 보기에 바쁜 나날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무책임한 격언 따위에
저 바다를 호령하는 거야
어처구니없던 나의 어린 꿈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던 날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이
끝내 그 이름 더럽히고 말았네

우리는 우리는
어째서
어른이 된 걸까
하루하루가
참 무거운 짐이야
더는 못 간대두

멈춰 선 남겨진 날 보면
어떤 맘이 들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잘도 버티는 넌

하루하루가
참 무서운 밤인 걸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루는 더 어른이 될 테니
무덤덤한 그 눈빛을 기억해
어릴 적 본 그들의 눈을
우린 조금씩 닮아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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